[가정예배] 8월 31일~9월 5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8월 25일(화) 15:34

월-산 위에 있는 동네로
본문 : 마 5:13~16
찬송 : 502장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맛을 잃어 부패된 땅에 소금으로, 어둠으로 방황하는 세상에 산위에 있는 동네로서 밝은 빛을 비추게 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꿈과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죄에 빠져 자신을 녹이며 희생하며 세상의 빛을 발하지 못한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사탄과 죄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꿈꾸시는 생명의 삶의 주인공으로 만드시려고 "너희는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소금과 같은 존재, 하늘의 빛과 같이 존귀하고 빛나는 존재들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부르셔서 이렇게 소금과 빛으로 만들어 가신다.
 
첫째는 산위에 있는 동네로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신다.


교회가 산꼭대기에 있는 동네로 있을 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빛남 아래 있을 것이다. 비추는 빛으로서 성도들은 숨기지 못할 산 위에 있는 동네와 같다. 빛은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기 위한 등의 빛남이고, 어두워진 세상의 어둠을 없애는 존재이다. 본질에 있어서 그들을 치료하는 소금, 행동에 있어서 빛을 비추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소금이 되기 위해 빛이 되기 위해 힘쓰는 자가 아닌 예수님께 붙어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것이다.
 
둘째로 등대 위의 등으로서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로서의 빛은 밖의 사람들에게 비취는 반면에, 등대 위의 빛나는 등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비춘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우리의 영향이 외적일 뿐 아니라 내적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등대 위의 등을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말이라는 것은 곡식을 담는 용기로서 먹고 사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생활의 염려, 불안과 갈등과 고통과 저주가운데 살고 있는 삶으로 말에 가리워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등대 위에 있어야 한다.
 
셋째는 우리들의 빛남, 착한 행실을 보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16절).
 
비추는 빛으로 찾아가는 생명의 성도들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예수님이 저들을 만날 것이요, 누구든지 교회와 만나는 자는 예수님과 만나고, 성도들의 섬김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천국백성으로 우리의 빛남 안에서 하나님을 볼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우리 예수님은 친히 소금이 되어 십자가에서 자신을 녹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소금이 될 수 없고 빛이 될 수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녹아주시고 태우심으로 우리에게서 소금의 맛을 나게 하시고 빛을 발하게 하는 이 땅에 소금과 빛의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봉재 목사
연곡소망교회

화-승리의 함성
본문 : 수 6:20~21
찬송 : 360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는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유목민들이었고 군사 훈련도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여리고성을 점령할 수가 있겠는가? 종종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의 문제들이 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었을까?
 
첫째,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위해서 몇 가지 행동지침을 내리셨다. 6일 동안 매일 하루 한 바퀴씩 돌게 하고(침묵하며)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나서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크게 불면 함성을 지르게 했다. 이에 순종한 결과 그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주셨음을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 것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선봉에서 싸우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여리고성이 있다. 이 성들을 하나님이 무너뜨려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여리고성이 가로 막을 때 어떻게 하면 될까?
 
둘째, 큰 승리의 함성을 지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주일동안 여리고성을 돌면서 침묵하게 하신 것은 부정적인 말이나, 원망, 불평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6일 동안 여리고성을 돈다는 것은 충분히 불평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원망 불평이 온 백성들에게 걷잡을 수 없을만큼 퍼지고 말 것이다.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연약한 마음을 잘 아시고 그들을 위해 침묵하면서 성을 돌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는 왜 함성을 크게 지르라고 하셨을까? 그 소리는 승리의 함성이다. 하나님께서 그 성을 무너뜨려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의 외침이었다. 그렇다. 오늘 우리가 외쳐야 될 소리는 원망 불평의 소리, 불신의 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외쳐야 할 소리는 승리의 함성이다. 믿음의 외침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문제의 여리고성을 향해 큰 소리로 선포하며 나가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에는 침묵하고, 큰 소리로 승리의 함성을 외칠 때 어떤 태산 같은 문제도 반드시 함락될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여리고성 같은 문제들이 가로 막고 있을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의 함성을 지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만호 목사
이루리교회

수-하나님의 복 받을 자녀로
본문 : 잠 3:1~10
찬송 : 393장 


교육에 있어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을 위해 부모들은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야 한다.
 
첫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잠 3:1~2).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로 양육하기 위해서 우선 부모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명기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말씀이 네 마음속에 존재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신앙교육은 어릴 때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마음에 새기도록 양육해야 한다.
 
둘째, 인자와 진리의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잠 3:3~4). 인자의 '헤세드'는 '아가페 사랑'을 말하며, 진리의 원어 '에메트'는 자신이 말한 바를 끝까지 준행하는 '성실성'을 가리킨다. 인자는 내면의 태도이며, 진리는 외형의 태도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녀라 하더라도 그들이 성실하지 않고 사랑이 없다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서 있기 힘들다. 인자와 진리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잊지 말자.
 
셋째,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잠 3:5~6). 의뢰한다는 말은 '기댄다'는 뜻이다. 마치 지게가 지팡이에게 의지하듯,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한계가 있으므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사람은 최고의 지혜자이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다 읽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 인생은 하나님이 설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신다.
 
넷째,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잠 3:7~8). 아무리 학식이 풍부해도 악의 자리에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악은 아무리 조심해도 가까이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뎌지게 된다. 그러므로 악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다섯째,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잠 3:9~10). 성경에서 '첫'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말한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소중한 보물을 잘 쌓아 두는 사람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언젠가 없어지는 것들이다. 영원히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이다. 주께 드릴 것은 온전히 드리고, 이웃과 연약한 자들을 위해 물질을 나눌 줄 아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놓는 자녀로 양육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둘 줄 아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학 목사
울산온유교회

목-콤플렉스와 사역
본문 : 출 6:10~13, 28~30
찬송 : 545장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제 각각 이런저런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모세 또한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를 하나님께 세 번이나 계속해서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 좋다 네가 말을 잘못하는 것은 나도 안다. 그래서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을 붙혀주겠다"고 하셨다.
 
모세가 이렇게 말을 잘 못하는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 것은 아마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유기와 분리불안, 양육과정에서 겪은 낯설고 불안정한 환경과 동시에 엄격한 왕실 분위기 등 수 많은 이유로 자폐와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못하고 살아온 모세는 언어 콤플렉스로 남 앞에 서면 위축되고 주눅들어 자신감을 잃었다.
 
성경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사울은 편집증 성격 장애, 선지자 엘리사는 대머리, 야곱은 과도한 경쟁심, 바울은 신체적인 것과 구변 콤플렉스, 베드로는 공작 콤플렉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장애요인까지 덮고도 남는 능력을 베푸신다. 즉,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여주신다. 사역은 완전한 사람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세의 사역을 통해 2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모세는 자신의 약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모자람을 고백하는 것. 자신의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모습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한 것이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수시로 구하고 힘입어야 한다.
 
둘째,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을 저울질한다. 모세가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하라하시면 해야 하는데도 계속 안하겠다고 한다. 모세는 이 부분에서 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계속 거부하니 하나님은 노하셨다. 나의 책임은 순종하는 것이고 잘되고 안되는 것은 주인 되신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우리는 종의 역할, 종의 위치만 생각하면 된다. 사역의 자유로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능력만 바라보면 아무 일도 못한다.
 
우리는 나의 부족함을 충분히 알고 고백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주의 뜻에 따르는 것이 성공이다. 순종이 성공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와 열등감으로 미약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사용하신다.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성공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면서 그것 때문에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여 주의 부르심에 물러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의 능력은 우리의 약점을 덮으시고 하나님이 친히 일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순종함이 성공임을 깨달아 주의 일에 담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성숙한 신앙과 인격
본문 : 눅 15:25~32
찬송 : 171장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나름 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타고난 성품에 따라서 신앙생활도 다르지만 은혜를 받고 신앙이 성장할수록 주님의 아름답고 훌륭한 성품을 닮게 된다. 문제는 열심히 봉사는 하는데 성품이 변화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듭난 순간부터 성숙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필연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잘 자라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하듯 우리도 그러하다. 성숙한 신앙과 인격, 미숙한 신앙과 인격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첫째, 자기 자신의 인식에서의 차이점이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지 못한다. 잘나지 못했는데도 잘난 척, 알지 못하는데도 아는 척, 죄인이면서 의인인 척 한다. 탕자의 형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지 못하는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이다. 자기는 의로운 줄 알고 효자인 줄 알고,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아프게 하는 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안다. 자기 자신의 죄가 얼마나 많은 지,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약한가를 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산다.
 
둘째, 남을 배려함의 차이점이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생각만 한다. 남에게 관심이 없고 동정도 없다. 동생이 고생하고 후회하며 돌아왔지만 형은 '저런 놈은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정이 없다. 성숙한 사람은 남의 입장을 생각하며 동정한다. 남을 먼저 배려한다.
 
셋째, 환난 당할 때 차이점이다.
 
환난 당할 때 성숙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도하면서 풀어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한두 번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다. 억울하다고 보복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도 화목하게 일한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정직하고 성실하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 공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자기가 받은 은혜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심지어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 자기 공로를 자랑하고 남과 비교하며 시기, 질투, 짜증, 화를 낸다.
 
성숙한 사람은 나중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책망을 들을지, 칭찬을 들을 지를 늘 생각한다.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겸손히 십자가를 바라보며 은혜를 사모한다. 바울은 자신을 쳐 복종하게 하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성질, 엉뚱한 생각을 버리고자 하는 성숙을 향한 몸부림이다. 성숙한 열매는 아름답다. 지금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오늘의 기도
 
환난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성숙한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도숙 목사
동산교회

토-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받는 보상
본문 : 막 10:17~30
찬송 : 445장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와 질문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의 답변은 "율법을 행하라"였다. 그러자 이 사람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답한다. 이런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을 사랑하시게 된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자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다. 영생을 갈망했던 사람이지만 재물의 힘 앞에서는 무능해지고 말았다. 영생을 질문했던 이 사람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대표가 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영생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물질 때문에 믿음생활의 현장에 오지 못한다. 예수님은 물질 때문에 영생을 놓치고 가는 사람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베드로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보상이 있겠느냐?"고 질문한다. 그 대답으로 주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더욱 주목할 것은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는 말씀이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성도들을 악랄하게 핍박했다. 성도들에게 산채로 불을 붙이기도 하고, 짐승의 가죽을 성도들의 몸에 씌워 맹수들에게 던져 주었다. 바늘로 온 몸을 긁기도 했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놋 접시를 몸의 가장 민감한 곳에 붙이기도 했고, 눈을 빼기도 했고, 몸의 일부분을 잘라서 그들의 눈 앞에서 굽기도 하였으며, 고통을 길게 하기 위하여 손과 발을 불로 태우면서 온 몸에는 물을 붓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모진 박해가 주님을 사랑함을 꺾었을까? 기독교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한다. 결국 로마는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 때 기독교가 국교가 된다. 많은 이들이 목숨의 위협에도 주님을 따랐던 순교신앙이 인류로 하여금 주님의 보상을 받게 한 것이다.
 
오늘의 기도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재운 목사
인동동부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