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그리운 시대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신정 목사
2015년 08월 11일(화) 13:59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독립군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암살'을 보고 나올 때의 심정이다. 일본 앞잡이 노릇했던 민족 반역자가 해방 후에도 경찰 고위 간부가 되어 법망을 빠져 나가지만 결국 자신이 배신했던 동료에 의해 처단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났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은 통쾌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았다. 세상살이는 영화처럼 맘대로 시나리오를 쓸 수 없음을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탓일까?

어느 덧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민족사는 매국노를 애국자로 둔갑시켜 놓기도 하였고, 여전히 친일파 후손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무관심하게 사는 세상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가진 자, 힘있는 자들을 위한 정ㆍ제계 인사 광복절 특별 사면에 관한 논의들은 국민들을 더 덥게 만든다.

이제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며 온 국민들로 하여금 이를 악물게 했던 세월호 문제는 뭐 하나 시원하게 밝혀진 것도 없고, 책임지는 이도 없이 흐지부지 역사 속으로 잊혀지고 있다. "무조건 믿어달라는 말만 하는 것이 꼭 교회 같았다"는 국회정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의 발언이나 "연금재단 돈으로 '고금리 대부업' 벌인 목사님"이라는 자극적인 제하의 뉴스는 진위 여부를 떠나 연일 계속되는 폭염보다 사람들을 더 덥게 만든다.

"충성된 사람은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는 잠언 25장 13절 말씀처럼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너무도 그리운 시대이다.

시원하다는 말은 '딱 좋다'는 뜻이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의 온도가 차다, 뜨겁다는 말이 아니라 '좋다, 딱 좋다'는 표현이다. 답답한 마음이 풀릴 때 '시원'이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시원'이다. 더부룩 하던 속이 뻥 뚫림이 '시원'이고, 미뤘던 일들이 잘 끝마쳐지는 것이 '시원'이다. 앞에 가림이 없이 전망이 확 트임이 '시원'이요, 거칠 것이 없이 달리는 것이 '시원'이다. 더울 때는 차가운 것이 '시원'이고,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이 '시원'이다.
바울의 서신에 보면 시원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전 16:18)
고린도교회 내의 여러 가지 갈등과 분열 속에서도 시원함이 되었던 충성스런 일꾼, 스데바나,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바울이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천거했던 그들은 어떻게 시원하게 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을까? 고린도전서 16장 13~18절 말씀을 살펴보면 그들은 복음의 첫 열매로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에게 시원함을 주었고, 성도들을 섬기는 일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고 한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열받는 일이 많은 세상, 연일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얼음 냉수 같이 시원함을 주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섬김을 받으려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셨던 예수님, 그 분의 삶이야 말로 시원 그 자체이셨음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 속에 시원함을 주는 한국교회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자.

신정 목사 / 광양대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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