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위한 변명,갈등의 정점에서 화해를 말하다

[ 논단 ] 주간논단

채영남 목사
2015년 07월 28일(화) 14:36

교회는 억울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교회에 대한 비판과 비난으로 무참하게 찢겨졌다. 뿐만 아니라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로 피투성이가 된 지 오래다. 많은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를 비롯하여 수치화 되어 있는 연구들을 통해 주의와 주장을 뒷받침하며 설득력을 호소한다. 또 이들의 결과물들을 수집하고 통합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문제 제기와 검증 데이터, 정보의 수용 및 여론의 확산 등의 순환은 결국 교회의 위기론으로, 또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교회는 이미 위기를 넘어 존재 존망의 길을 걸어야 옳다.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잘못된 것인가?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을 현장에 접목해 보아도 공감할 만한 성과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두렵기까지 하다. 한두 가지의 현상이 아닌 복합적이고도 다양한 문제가 원인이기 때문에 해결할 길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다시 문제로 들어가 보자. 비판은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를 향한 비판은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동일시대라 할지라도 모든 이들이 수긍하고 만족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개인의 기대심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 집단의 기대요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기대심리를 충족하는 일을 우선으로 둔다면 본질을 놓치게 될 우를 범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교회의 분열상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정치와 이념, 노선의 차이로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서로에 대해 반목하고 분열을 하였던가? 단언컨대 교회는 세속정치가 아니다. 또 자본의 바벨을 쌓는 도구가 되어서도 옳지 않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요한 요건 중의 하나인 복지가 교회 사역의 전부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좌(左)와 우(右)의 사이에서 교회는 특정 어느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증거요 목적이 되어야 옳다. 이러한 까닭에 진보진영에서는 교회를 향하여 보수라 말하고, 보수진영에서는 진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 어느 것에도 순응하지 않는 교회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판과 비난에 담담해질 필요가 있다(요일 3:13). 또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받는 미움에 대해 기뻐해야 할 일이다(눅 6:22).
 
교회는 복음을 붙잡을 때에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때가 복음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음을 기억하자. 특정 집단의 인정을 받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또 그들의 요구가 '복음'이라는 논리도 버려야 옳다.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확산하는 비복음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사회 갈등을 해소시킬 사회 통합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한완상 전총리의 개탄이, 복음을 상실한 부끄러운 한국교회라는 비판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다. 교회는 세상의 질서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수님의 질서를 세워가는 복음의 첨병이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 현대의 '네피림'을 동경하며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복음으로 재편되는 질서와 체계의 확산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오직 복음만이 대결구도를 화해로 풀어갈 수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이제 세속의 요구 앞에 입장을 분명히 하도록 하자.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결코 선택의 대상이 아닌 숙명이요 운명임을(롬 14:8) 천명하도록 하자.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일어서도록 하자. 교회에 대한 보편적인 요구 뒤에 숨겨진 개개인의 탐욕을 직시하고 본래의 교회로 나아가자. 사회와 교회의 공개념 일치가 아닌,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를 위해 헌신하도록 하자. 분열된 사회와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세상을 화해와 사랑으로 품는 것이야말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우리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깰 수 있는 것은 정치와 이념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루어낸 생명의 은혜이다. 그 은혜를 위해 달려온 성총회는 갈등과 대립의 회오리 속에서도 정결함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위대한 신앙의 자산을 계승ㆍ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걸어가셨던 그 길(엡 5:2), 우리도 주를 위해 우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희생제물로 드릴 때에 천하만민이 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채영남목사/부총회장ㆍ본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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