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강정식 목사
2015년 07월 28일(화) 11:22

한국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 중 유명한 것이 바로 '빨리빨리'라는 단어다. 예전에는 우스갯소리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가장 먼저 '빨리빨리'라는 말을 배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성격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많은 사람이 '빨리빨리'의 부작용을 실감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지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며, 각박해지고, 결과를 서둘러 내놓을 수만 있으면 어떤 방법이든 개의치 않아 하는 경향이 생겼다.

최근에는 그러한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쉼'과 '힐링'이 주목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잠시 머물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자는 것이다. 삶의 속도감에 지친 사람들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러한 마음에 응답하듯, 요즘은 여유와 쉼을 찬양하는 목소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은 게으름마저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유명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모든 죄악의 근본은 조급함과 게으름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카프카가 '조급함' 뿐만 아니라 '게으름' 또한 죄의 원인으로 꼽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성급함이 우리가 옳지 못한 수단마저 선택하게 하는 위험성을 가졌다면, 게으름은 우리가 죄악에 저항하기를 포기하게 하는 위험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힐링, 진정한 쉼이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대신 '기다림'을 통해 힐링하고, 쉼을 얻어야 한다.

기다림은 조급함과 게으름 사이의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멈춰있지만, 동시에 긴장된 상태를 의미한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멈춰있지만,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아가기 위한 준비 동작이다. 기다림은 집중하는 과정이고, 생각하는 과정이다. 100m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들을 떠올려보라. 심판이 "준비"라고 말하는 순간 기다림이 시작된다. 그들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반응하기 위해서다.

기다림은 또한 소망과 설렘이다. 연인과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겉보기에는 그저 시계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에는 기쁨과 기대가 충만하고, 희망과 계획이 가득하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오심을 믿고, 소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기다림의 대가들이다. 우리는 기도로 기다리며, 소망으로 기다린다. 우리는 모든 결정의 순간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준비하며 기다린다. 주님은 기다리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허락하시며, 기다리는 자들을 들어 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결과로 주님께 자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그 분 앞에서 쓰일 준비가 된 것을 자랑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세상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멈춰 선 것으로, 서성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은 주님과 나의 대화의 시간이요, 축복받을 준비의 시간, 기회의 시간이다.

강정식 목사 / 새성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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