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황하는 젊은 세대 향한 사역

[ 땅끝에서온편지 ] 땅끝에서온편지

강희영 선교사
2015년 07월 28일(화) 11:10
▲ 2009년 15개 동역교회를 모아 연 첫 연합집회에 모인 청년들.

공산세계로부터 독립후 밀려드는 서유럽의 자본주의 문화와의 충돌로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은 서구의 발달된 문명에 맞설 그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와 현실은 깊은 괴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 어느 날 길거리 마다 술에 취한 채 술병을 들고 방황하며 '네오나치즘'에 물들어 머리를 삭발하는 청년들이 늘어 갈 즈음이었다. 대사관에서 교민 공지 사항으로 스킨헤드들이 거리를 방황하니 다니지 말라는 경고가 날아들고 있었지만, 테러를 당하는 데는 다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테러 당한 이들을 책잡던 나는 어느 날 저녁, 전철 역 앞에서 나를 중국인으로 오인한 청년들과 시비가 있었다. 부끄럽게도 점잖은 대응을 못하고 함께 소리치며 다투었다. 돌아오는 길에 억울하기도 하고 못난 대응에 부끄럽기도 하여 집 앞의 강가에 주저앉아 주님께 '왜? 이일이 저에게 생겼나요?' 절망하며 '이곳이 제가 머물 곳이 아닌가요?'라며 물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 용서 하고 싶지 않은 그들을 향한 주님의 생각은 "저들에게 비전을 품게 하라" 였다.

그 일 후에, 그들의 방황의 원인을 알기 위해 지하철 역 앞에서 서성이던 나는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나왔다가 겨울이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철새 같은 삶을 사는 많은 청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와 시비를 붙었던 청년, 비탈리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직자로서 힘겹게 살아 가야하는 것으로 인해 꿈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한 개의 빵과 한 잔의 차에 녹아지는 마음을 보며 그들과의 만남을 지속하였고, 겨울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후 몇 년 뒤 비탈리의 고향 근처에서 순회 사역하던 중 교회학교 교사가 되어있던 그를 만났다.

비탈리 사건 후 복음의 접촉점을 "당신은 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비전은 직업이 아니라 당신의 삶의 의미입니다.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를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는 것으로 정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나를 한국에서 보내셨습니다. 당신 때문에 난 가족과 교회를 포기하고 여기 왔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접촉점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을 통해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네트워크는 이상 없는가?', '감각의 실수',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제로 그룹을 만들어 만남을 가지고 그후에는 현지 교회로 등록하게 하였다.

이렇게 작은 시작이 이뤄지고 있을 때 주님은 우크라이나 청년을 위하여 발레리 리센스키 목사가 담임하는 소망교회에 협력을 제안하셨다. 2009년 5월, 15개 동역교회를 모아 첫 청년연합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것이 CNL이라는 TV에 방영이 되어 각 지역 도시마다에 청년들의 연합체가 이루어지고 서로 유기적 활동을 하는 동기가 되어졌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구원의 통로 였다면, 오늘 주를 믿고 따르는 당신의 십자가의 희생이 구원의 도구입니다."

강희영 선교사 / 총회 파송 우크라이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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