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기고 ] 기독공보 창간 70주년 지중해 크루즈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정재훈 목사
2015년 07월 23일(목) 10:07

6월 19일부터 11일간 지중해 크루즈 성지순례를 무사히 다녀온 것은 주님의 은혜였다. 행선지는 공산권 치하에서 벗어난 크로아티아와 바울사도가 선교한 아테네, 터키, 이탈리아 그리고 그가 순교당한 로마이다.


이번 여행은 기독공보사가 창간 70주년 기념으로 시행한 행사여서 그 의미가 컸고 여행의 행선지와 목적지에서 되어진 역사(役事)와 오늘의 현실 그 과정들이 본문에 주된 이슈가 되겠다. 아테네는 성서의 아덴이다(행 18:1). 베뢰아에서 데살로니가에 온 유대인들의 소동을 피하여 바울이 여기에 왔다. 그는 유대교 회당과 장터에서 에피크루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변론하였고 이들에게 붙잡히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강연하며 전도하여 소수의 믿는 자를 얻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행17:22)" 하고 외친 바울의 음성이 메아리쳐 오는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생을 마감한 감옥을 보는 순간 탈옥을 권유하는 제자들에게 "악법 또한 법이다!" 갈파하고서 독배를 마시던 그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아테네는 고대 도시국가의 맹주로 활약하였고 헬라 문화의 중심지로서 지금은 그리스의 수도이다. 철학의 진원지였으며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운 중심지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독일이 철학을 예술은 이탈리아가 가져갔기에 흉물스러운 그 잔해만 보일 뿐 무척 빈약해 보였다.
 
바울사도가 전도하여 설립한 소아시아 일곱교회가 터키 전 지역에 산재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주의 사자가 호되게 책망한 것을 볼 수 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순례자를 안타깝게 한 것은 바울이 그토록 고난을 겪으면서 전도하여 세워놓은 교회들마다 흔적마저 찾을 수 없는 실제이다. 더군다나 이슬람 제국 천지가 되었으니 "촛대를 옮긴다"하신 주님의 대답이 아닐는지….
 
마침내 바울은 1,2,3차에 걸친 소아시아 이방선교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에베소 전도가 성공적으로 진행 되는 동안 바울사도께서는 제2의 새로운 전도지를 전망한 곳이 로마이다. 그는 수차례 로마행을 시도하였으나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로마에 가서 복음전하기를 소망하였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는 포부를 밝힌 배경은 두 가지이다. 3차 전도여행의 종점인 고린도에서 기록한 로마서 15:23에 "이제는 이 지방에 일 할 곳이 없고"의 말씀을 보아 선교사역의 시점을 치밀하게 통찰한 바울의 지혜였다.
 
다른 하나는 로마에 관한 그의 식견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다 더 멀리 효율적으로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서는 로마에 가야 했다. 로마에는 벌써 주님을 영접한 신자가 있어 바울을 환영해 주었고 찾아오는 교인이 많았다.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다.(행28:30-31) 그 간 엡, 빌, 골, 몬 4서를 기록하였다. 옥중서신이다.
 
바울의 종말은 미결수에서 잠시 풀려났다가 재차 투옥되어 끝내 순교하였다. 네로 박해 때 이다. 유감스럽게도 바울이 서반아에 가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 같다. 가지 못할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제2의 서반아가 있을까? 정녕 있다면 바울 대신 거기에 갈 것을 이제라도 주님이 명하실 줄 믿는다. 베드로와 함께 참수당한 그의 피는 헛되지 않아 313년 콘스탄틴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내려지고 기독교인의 신앙 자유가 허락되었다.
 
이상으로 바울에 관하여 각필하고 그를 통해 얻게 된 주님의 은총을 말하겠다. 금번 크루즈 성지순례 전반이 바울사도의 선교행적을 답사하고 그로 인한 역사의 현장을 접해 보는 여행이었다. 그가 로마에 가서 목숨 바쳐 증거한 복음이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지나 아시아 동녘 한반도에 전달되어 우리네가 구원받았다. 그 혜택으로 지중해를 오가면서 유럽에 작은 정원 크로아티아를 구경 하였고 그 이름도 아름다운 베니스 항구를 유람하였다. 피렌체에 가서는 신곡(神曲)으로 유명한 단테의 생가도 보았다. 카타콤에 들어가서는 최초 기독교인들의 신앙 정절이 어떠했는지를 절감하였다. 바울이 갇혔던 감옥을 보면서 위대한 전도자의 최후가 눈에 선 하였고 그곳에서 기록했을 디모데후서를 펼쳐보았다. 콜로세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다 보니 베드로성당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로마 이탈리아는 가톨릭 세계이다. 그런데도 현지 안내자로 수고하신 테너가수 김재환 집사님의 말을 들으니 보이는 교회만큼 교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몰 현상이 한국교회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되겠음을 경성해 본다. 로마를 떠나면서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았다. 2000년 기독교가 시작된 옛날부터 로마가 아직도 역시 로마이니 그대에게는 어째서 흥망성쇠가 예외인지 모를 일이다. 지극히 유한한 정오의 햇살이 로마에게만 비켜가고 있으니 하나님의 섭리를 주님만 아시리라.
 
부언하면 여행 중 고시영 목사님의 인문학 강의와 "주는 자가 복 받는다"고 증언하신 이창연 장로님의 열강을 경청한 것이 영육 간 영양가 섭취에 크게 유익하였다. 바라기는 모처럼 크루즈로 성지에 다녀온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조금 더 연구하고 보완하여 전 크리스찬이 선호하는 상품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재훈 목사/서부중앙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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