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사업의 시작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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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2일(수) 13:49

후원회 발족 첫 해 한아협 산하시설에 작은자후원회 후원금이 보내졌다. 이 후원으로 강원도 황지교회 늘봄어린이집 주방, 장안제일어린이집 도서관, 장전어린이집 목욕실과 에덴어린이집이 건축됐다. 또한 샘터교회유아원 원아 수술비로도 사용됐다. 이 원아는 흉부에 종양이 있었으며, 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이 어린이의 수술을 위해 세광병원과 뜻 있는 몇 사람의 도움이 더해졌다.

작은자후원회 후원은 한아협 산하시설과 아동에게 국한되지는 않았다. 거처할 집이 없는 한 어린이와 그의 가족들은 가리봉중앙교회 후원으로 월세방을 마련했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6남매에게도 거처할 방이 생겼다. 어떤 아이의 아버지는 광산 사고로 손이 절단돼 고물 수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고물 수거에 사용되는 경운기가 고장났다. 이 소식을 들은 작은자후원회 회원들은 경운기 수리비용을 보내주었다. 작은자후원회 활동으로 곤경에 처한 가족들에게 도움이 지원되면서 한아협 후원 대상이 넓어졌다. 

작은자후원회 지원사업은 KNH 지원사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서울후생학원은 KNH 후원을 받는 시설이었다. 작은자후원회에서는 서울후생학원에 1988년 한글과 영문타자기 8대를 후원했다. 1988년 나전중앙교회 유아원에서는 주변 초등학생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KNH에서는 가스렌지 및 주방도구를 지원해주었고, 점심식사비는 작은자후원회에서 지원됐다. 1990년 샘터 유아원 화장실, 보일러 설비, 또는 민들레유아원 후원 등이 KNH와 상의됐다. 또한 작은자 후원회가 존재함에 따라 한아협 운영위원회 임원회에서는 1990년 산하시설 세탁기, 냉장고 등 소규모 설비 구입은 KNH에 요청하지 않고, 교단 사회부와 협력해 해결하도록 결의됐다. 작은자후원회 발족 이후 한아협 산하시설 후원은 작은자후원회, 각 교단 사회부, KNH 세 단체의 역동적인 협력사업이 됐다. 

작은자후원회 발족으로 한아협 사업 지경도 넓어졌다. 그 동안 한아협의 후원은 대체적으로 서울과 성남, 부산, 대전, 대구 등 도시 근로자 자녀들과 남양만 등 농촌지역 자녀들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런데 1986년 강원도 탄광지역 후원이 시작됐다. 1986년 10월 한아협 운영위원회 임원들은 탄광촌에는 규폐증(규산이 들어있는 먼지를 오랫동안 마셔서 폐에 규산이 쌓여 생기는 만성질환) 환자가 많고 편부모 슬하의 자녀들이 황지 주변에만도 90여 명이 된다는 황 총무의 보고를 받았다. 이에 탄광지역 어린이들이 소외되고 특히 버려진 아동들을 돕는 사업인 KNH 후원 사업의 대상이 됐다. 이후 탄광촌 방문과 탁아프로그램 후원이 계속 이어졌다. 1988년 작은자후원회 총회에서 후원자들은 탄광지역 작은자를 집중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후원을 넘어서 해외 후원도 시작됐다. 황화자 총무는 1987년 6월 인도네시아에 갔다. KNH 선교협력기관 원장 및 교사 세미나 강사로 인도네시아 아동복지시설 교육에 힘을 보탰다. 돌아오는 길에 필리핀 협력기관에도 들렀다. 

황 총무는 이 두 나라에서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가난을 보았다. 인도네시아의 한 목사는 탁아소 운영을 위해 매월 필요한 50달러가 없어서 손을 놓고 있었다. 황 총무의 귀국보고를 통해 인도네시아 사정을 알게 된 작은자후원회 임원들은 1987년 7월 6일 두 번째 열린 임원회에서 인도네시아 어린이시설 하나와 2명의 어린이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김숙자 권사가 후원을 자원했다. 같은 연합회 이명숙 권사는 탁아소 건축을 돕겠다고 했다.(작은자복지선교회 20년사, 95) 

 /여전도회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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