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 희망편지 ] 희망편지

장보철 교수
2015년 07월 21일(화) 17:13
▲ 이경남 차장 knlee@pckworld.com

이른바 중동호흡기장애로 불리는 메르스(MERS)로 전국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며 아직도 진행형이다. 물론 지금은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나 메르스의 전파율이 많이 낮아진 상태다. 다행히도 7월 6일 현재 추가 확진자나 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메르스 치사율이 17.6% 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메르스와 같은 치사성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사람들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먼저 필자는 화장실에 가면 일을 본 뒤 전혀 거품을 만들지도 않고 비누를 손에 바르는 흉내만 내고 대충 닦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세상에 애착이 많아서 일찍 죽고 싶지 않은지, 거의 1분 이상 반드시 비누 거품을 내서 손을 싹싹 비벼 씻곤 한다. 손소독제를 충실히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죽음을 몰고 오는 바이러스를 대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두려움일 것이다. '내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걸려서 죽 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야구장에 가는 것을 머뭇거렸고, 많은 세미나들은 취소되었고, 심지어 교회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삶과 두려움의 관계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쪽에서는 메르스에 걸릴까봐 두려워서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살아가면서 생기는 삶의 무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죽으려 한다. 이렇게 볼 때, 두려움 그 자체는 아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다. 중립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두려움 사이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커다란 차이는 두려움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느냐 일 것이다. 살아야 한다면 비누칠도 하고 소독제도 바른다. 반면에 사방이 꽁꽁 막혀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조건만을 본다면 그는 죽음을 택하고야 만다.
 
마음에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두려움이 없는 삶이란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과 미디안 광야를 떠나 다시 애굽으로 건너 간 모세.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들도 두려워하였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것이 희망이다. 즉, 희망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났다. 지치고 힘든 상태에 있는가. 우리 삶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두려움을 맞이하자. 그리고 일어나 몸으로 살아가자.

장보철 교수/부산장신대학교 목회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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