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경국지색(傾國之色)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5년 07월 14일(화) 13:43

수 년 전 졸업 이후 자주 만나지 못했던 언론홍보대학원 동창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약속 시간 보다 조금 늦어 도착한 자리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낯설은 숙녀 한 분이 제게 아는 체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게 맞는데 저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목사님, 저 OO인데요"하는 순간, 저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분명 저와 함께 한 강의실에서 동문 수학한 클래스 메이트였습니다. 국내 굴지 기업의 홍보담당 직원. 물론 나이는 15년 이상 차이가 나고 저는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그녀는 광고홍보를 전공해서 자주 어울리지 못했지만 강의실이나 식당에서 만나면 담소를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문제는 그녀의 얼굴이 제가 알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밝히고 반갑게 웃는 모습에서 저는 아무리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공중파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자기 부인에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 보았냐" 며 "성형수술해도 소용없다"고 타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격했습니다. "성형수술이 이렇게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도 있구나. 옛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중국의 대표적 미녀로 꼽는 서시와 양귀비에 대한 이야기 중에 '침어 수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여인으로 오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서시의 모습을 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잊은 채 강바닥에 가라앉았다'고 해서 미인을 보면 '침어(沈魚)'라고 했다고 합니다. '수화(羞花)'라는 말은 양귀비가 후원을 거닐다가 건드린 꽃잎이 안쪽으로 말리자 '미인을 만나면 꽃도 부끄러워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말이라 합니다. 중국은 미인을 지칭하여 '나라를 기우뚱하게 할 만한 미모'란 뜻의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부른 것을 보면 대단한 외모지상주의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외모지상주의는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닌 듯 합니다. 인구 대비 성형수술률 세계 1위 국가란 사실은 이것이 자랑할 일인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제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중국 여성들도 성형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단체관광을 온다는 뉴스를 곧잘 듣습니다.
 
외모지상주의를 일컫는 루키즘(lookism)은 외모에 근거한 차별이나 편견을 말합니다. 개인의 성패나 능력, 심지어 인격마저도 외모를 근거로 판단하는 가치체계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소위 얼짱 몸짱의 사람들은 설령 다른 것들이 부족할 지라도 "예쁘니까 괜찮아, 날씬하니까 용서가 된다"는 식입니다. 심지어 외모에 '착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합니다. 외모가 도덕적 잣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인 것이죠. 한국교회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모습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교단도 제100회 총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가끔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기 공명심이 앞서는 결과라 하겠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보여지는 부분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성숙함이 가득한 일꾼들이 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예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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