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크레케(Creche)와 성탄장식의 원리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7월 13일(월) 17:36

예술과 영성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성탄이 가까워질수록 성탄절 장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예술적 분위기는 성탄절 예배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인데, 혹 이 분위기라는 것을 감정적 낭비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설렘, 기다림, 기쁨과 같은 성탄과 관련된 표현들 대부분이 지적이기보다는 정서적인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성탄장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교회마당이나 예배실 입구에 마련된 마굿간과 아기 예수가 뉘인 말구유가 설치된 크레케(creche)일 것이다. 대부분의 크레케는 실물을 연상시키는 크기로 만들어진다. 불어인 크레케는 '아기 요람'이라는 뜻과 요람이 놓인 장소 모두를 뜻하는데,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에게는 아직 낯선 성탄장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크레케의 역사를 알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며, 성탄축하는 물론 교육적 효과도 뛰어난 도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크레케의 시초는 1223년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가 성탄예배를 위해 그레치오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 그 도시의 수도원 예배실이 전체 주민과 함께 성탄 이브 예배를 드리기에는 너무 비좁았기에, 마을 중심부 지역에 알맞은 장소를 찾아 그곳을 예배환경으로 꾸몄던 것이다. 한 마디로 야외예배였던 것이다. 주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프란치스코는 실제의 마굿간 분위기를 만들고 아기 예수의 말구유는 짚으로 채웠으며 그 옆에 황소와 당나귀 한 마리를 각각 놓아두었다. 그렇게 꾸며진 마굿간을 보며 프란치스코 자신도 감격하며 예배를 인도했고 감동의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나중에 교황의 허락을 받아 그 구유 위에 제단을 놓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러한 전통이 아직도 남아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탄절 한밤중 예배를 이 크레케에서 간단히 시작한 후에 예배실로 이동한다. 이처럼 프란치스코로 인해 크레케 문화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최초의 크레케는 베들레헴에 있었던 바로 그 마굿간과 말구유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그 크레케의 위치를 잊지 않고 구전으로 전하였었다. 그러다 248년에 오리겐이 베들레헴에 있는 한 동굴과 구유를 최초의 크레케 지점이라고 지목하였는데, 그 후로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렌이 그 동굴을 변형하여 교회를 만들고 그 안의 한 지점을 예수가 나신 위치라고 표시해두었다. 그리고 6세기부터 그 지점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념예배가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신교회들은 크레케 위에 제단을 세워 예배를 드리지는 않지만, 성탄장식은 물론 선교와 교육용으로 잘 활용해오고 있다.

그럼 언제 크레케를 설치해야 하나? 만일 대림절 기간에 설치하여 주님을 미리 만나게 한다면, 정작 성탄절 이브나 당일에는 주님이 오셨다는 느낌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대림절 장식과 성탄절 장식은 명백히 구별될 필요가 있다. 보라색, 남색, 그리고 회색빛의 대림절 분위기에서 흰색, 노란색, 황금색 등의 밝고 환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연출할 필요가 있다. 성탄절 장식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반드시 성육신의 신학적 의미들이 예술적으로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장식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집중되도록 단순하고 서로 통일감 있게 표현되어야만 한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