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 숲길의 쉼표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조재호 목사
2015년 07월 13일(월) 17:14

6월의 어느 날, 혼자서 제주도의 '시크릿 가든' 사려니 숲길을 걷고 있었다. 사려니 숲길은 붉은오름에서부터 물찻오름을 거쳐 절물오름 근처 비자림로 입구까지 이르는 약 10km의 힐링 코스이다. 도종환 시인이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했던 그 길을 나는 외로운 나그네인양 혼자 그리고 느리게 걷고 있었다. 비자나무 사이로 파고들어와 소리 없이 내려앉는 햇빛을 간간히 받으며, 숲길의 싱그러운 냄새에 후각기관을 활짝 열고 걸었다. 이방인의 눈은 길을 따라 뒤로 흘러가는 숲 속 어딘가를 쳐다보면서, 귀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새소리를 놓치지 않고 녹음이라도 할 듯 부지런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 길에 아기를 안은 행복한 젊은 부부도 보이고, 엄마와 딸이 친구처럼 손을 붙잡고 지나가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옷을 뽐내듯 입은 '줌마클럽'도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서 한 남자의 퉁명스러운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렸다. 남자가 아내 뒤를 따라가며 하는 말, "이제 그만 돌아가자.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길인 것 같은데 더 가 봐야 똑 같은 길이야. 이럴 시간에 다른 곳에 가서 한 두 개 더 보는 게 훨신 낫겠다." 아내는 더 걷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다는 남자의 성화에 얼마 못가 그만 길을 포기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지만 사려니 숲길에서 만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이 세상에 똑같은 길은 없다. 저쪽으로 뻗어있는 사려니 숲길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우리가 걷는 길이 다르듯 인생의 길이 다르다. 우리에게는 그 길에서 사려니 쉼표가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세상이다. 정신없이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교회 방과후교실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입에서 "목사님 나도 바빠요"라는 말이 그냥 튀어나온다.

우리는 얼마나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타임푸어(time poor)'족이다. 정보통신의 급격한 발달은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판단과 행동도 LTE 기가급을 요구하고 있다. 빠른 속도에 속절없이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느림은 자칫 게으름과 죄악으로 인식되기 쉽다. 바쁜 우리는 무엇엔가 추월당할까 노심초사하는 초조감과 헨리 나우웬이 말한 강박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라면시대에서 다시금 뜸을 푹 들여야 완성되는 한 그릇의 밥과 같이 느긋한 시간으로 완성되는 슬로우푸드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프랑스 작가인 피에르 쌍소가 쓴 책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속도전에 정신없이 길들여져 가고 있을 때, 그는 점잖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느림은 경쟁에서의 뒤쳐짐이나 패배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와 즐거움, 그리고 평안함과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신경퇴행성 질병인 파킨슨병에 걸려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정신의학자 김혜남. 그녀는 어쩔 수 없는 느린 움직임의 좌절에서 인생의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느리게 움직이니까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속도와 바쁨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복잡한 음표와 기호로 꽉 찬 위대한 교향곡이라고 할지라도 곳곳에 쉼표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삶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사려니 숲길 같은 쉼표가 필요하다. 이 여름 주님과 함께 걷는 여유롭고 행복한 산책을 꿈꾼다.

조재호 목사 / 고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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