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13~18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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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8일(수) 13:41

월-긍휼을 입은 까닭이라
본문 : 딤전 1:12~17
찬송 : 279장

벌써 반년이 지났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뛰어왔다. 그 이유는 잘 살기 위해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부자로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출세를 해서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오늘 성경에 주인공인 바울 사도도 예수 믿기 전에는 잘 산 사람이다. 시대마다 민족마다 힘의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문이었다.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훌륭해도 상놈의 신분이면 죄 없이도 양반에게 굽실거려야 했고 과거시험을 볼 수도 없었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바울이 살던 시대 유대사회에서 어깨에 힘주며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는 것도 그와 비슷했다.
 
첫째는 순수한 유대혈통이 아니면 유대사회 속에서 멸시받고 살았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이지만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앗수르인과 혼합된 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멸시를 당했다. 둘째는 할례를 받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셋째는 유대인들이 만든 율법조항과 전통을 얼마나 잘 지키는 파에 속한 사람이냐가 중요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4~6)."
 
학벌로 보아도 그는 당시 최고 선생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할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화려한 스펙을 가진 바울이다. 그런데 그러한 스펙을 가지고 살아 온 자신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니 자기는 별수 없는 '죄인 중에 괴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사도가 되었는가? 13절과 16절에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이며" 14절 "주님의 은혜를 입은 까닭이며" "주님의 사랑을 입은 까닭"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자신의 스펙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스펙을 가지고 힘주며 산다. 그러나 살아온 자신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니 역시 남는 것은 죄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감생심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될 수 없는 죄인이다. 주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은 고사하고 천국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긍휼을 입어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씻음 받아서 지옥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독생자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영접하는 자마다 주시는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오늘의 기도
 
주님!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휘두르며 살지라도 남는 것은 죄뿐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고 십자가 붙잡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명복 목사
천광교회

화-나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본문 : 행 14:8~18
찬송 : 80장

우리에겐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 분을 믿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비한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신비한 연합을 바울은 "내 안에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했다. 내가 살면서 그리스도가 사는 것 같은 신비한 연합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신비한 연합을 이루었다고 내가 예수님은 아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은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하니 일어나 걷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러자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소란을 피웠다. 문제는 놀라운 기적을 직접 목격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들을 만류하여 자기를 신격화하는 백성들의 행동을 제지한다.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로 예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삼위일체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하였기에 죽이려 했다.
 
둘째로 나는 철저한 죄인이다. 베드로는 기적적으로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힌 엄청난 고기를 보아도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바울은 영적으로 가장 성숙했을 때 자신을 가리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과 분리시키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지금 죄를 짓지는 않아도 우리는 과거의 죄를 '용서받은'죄인들이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해도 내 능력으로 죄를 안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셔서 죄를 안 지은 것뿐이다.
 
나는 결코 예수님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영적 세계를 거닐어도 절대 예수님이 될 수 없다. 성경을 수백번 읽어 영성이 폭발해도 결코 예수님이 아니다. 바울처럼 영적체험을 해도 나는 죄인인 사람일 뿐이다. 다만 예수님과 신령한 연합을 하여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자일 뿐이다. 우리는 주님이 용서한 '의인이라 인정받은 사람'일 뿐이다.
 
오늘의 기도
 
나는 철저히 용서받은 죄인이오니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성수 목사
산울교회

수-하나님의 계산 방식
본문 : 삿 7:1~7
찬송 : 351장

우리는 숫자에 민감하다. 돈이 그렇다. 만약 만원짜리 옷을 5천 원에 산다면 기분이 좋다. 사람 수에도 민감하다. 전쟁의 상황에서 군사의 수는 승패와 직결된다. 그래서 숫자에 의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숫자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사람의 계산법과 하나님의 계산법은 다르다.
 
기드온이 나팔을 불고 군대를 모집하자 3만2천 명이 모였다. 든든한 군대가 되었다. 싸워볼만 했다. 기드온은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갔다. 미디안 연합군이 마주 보이는 곳에 진을 쳤다.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따르는 군사가 너무 많다." 하나님은 왜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실까? 2절에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많은 수의 인원을 데리고 전쟁에 나간다면 그곳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승리를 거둘 때에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승리했다고 여길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기 원하신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을 따라서 군사들 중에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는 숫자 아닌 하나님의 명령을 의지했다.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2만2천 명 가량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다. 하나님은 그 숫자도 많다고 하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돌려보내라!" 기드온은 만 명을 데리고 물 가로 가서 물을 마시게 했다. 물 마시는 방식에 따라 군인들을 구분했다.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시는 사람으로 구분했다. 손으로 떠서 물을 핥아 먹는 사람이 삼백 명이었다. 하나님은 그들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하셨다.
 
삼백 명은 하나님만 믿고 싸워야 할 전쟁에 부름 받은 믿음의 용사들이다. 이 사람들은 300이라는 숫자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더 높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숫자가 아닌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숫자로 부르시지 않고 믿음을 따라 부르신다. 그분의 부르심에 지금 대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기도

눈에 보이는 숫자에 연연하고 계산하는 데에 빠른 저희였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만이 전능하심으로서 저희를 도우시며 믿음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인돈 목사
아름다운교회

목-예수님을 만난 자의 변화
본문 : 요 4:1~26
찬송 : 314장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에서 왕성한 사역을 했지만, 자신들의 사상과 다른 자들을 색출하던 바리새인과의 충돌을 피해 갈릴리로 가셨다. 하나님의 더 큰 인류구원의 계획 아래에 샬롬을 선택하며 그곳을 떠나셨다.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던 유대인들은 우회 길로 갈릴리로 갔지만,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가셨다. 예수는 당시 사람들이 가진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장벽을 넘었다. 사마리아 여성들은 혼혈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여겨져, 남성들보다 더 심한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본문의 물 길러 나온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물을 좀 달라"고 말을 건네신다. 예수님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장벽, 남성과 여성의 장벽, 경멸의 대상과의 장벽을 넘어, 대화를 통해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다. 수가성 여인이 샬롬의 강을 통해 장벽을 넘어오신 예수님을 만나자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 변화인가?
 
먼저 호칭의 변화가 일어났다. 수가성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단지 목마른 사람, 다음에는 유대인, 이어서 랍비, 그 후에 선지자, 마지막으로는 메시아로 부르고 있다. 호칭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를 차례차례 메시아로 파악해 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차례차례 알아가는 수가성 여인은 질문도 변하고 있다. 질문이 변한다는 것은 관심의 대상, 초점이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왜 물을 달라느냐"고 묻는다. 그 다음은, 우물에 온 현재의 목적인 '생수'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이 '예배'로 바뀌고 있다. 최종적으로 '메시아 그리스도'에게로 관심을 바꿔 얘기하고 있다. 썩어 없어질 현재의 목적에서, 영원한 생명 되시는 메시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고 있다.
 
셋째, 행동도 바뀌고 있다.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그녀는 사람을 피해서 다니는 존재였다. 그러나 자신이 만난 사람이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알고는 사람들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사람을 피해 다니던 여인이 이제는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을 향해서 가고 있다. 그리고는 전도자가 되어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친다. 예수님을 만나자 행동과 삶이 변화되었다.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장벽을 넘어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의 모진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장벽을 넘어 오신 행동하시는 예수님과 그의 계시의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수가성 여인처럼 우리도 가치관과 기준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샬롬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행동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계시에 응답할 때 성장이 있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더욱 주를 알아가게 하시며, 주를 향한 삶의 고백이 깊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영 목사
이주민센터 라함 대표

금-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본문 : 딤전 4:1~5
찬송 : 339장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건강이 제일이다. 건강하려면 좋은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음식은 건강한 삶에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다. 얼마만큼 소화력이 있느냐? 그게 건강의 키 포인트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달리 번역해 본다면,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유익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건강과 능력과 성공의 비결이 담겨 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충성하지 못했는가?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감사함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나에게는 한 달란트만 주시나? 비교하는 마음, 불평하는 마음 때문에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왜 힘들어 할까? 그 사건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수용이 되지 않아서 힘든 것이다. 인생에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감사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많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의 초점을 어떻게 하면 내게 주어진 상황 가운데서 더 많이 감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감사함으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에 맞춰야 한다. 감사함으로 소화해 낼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나에게 유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이렇게 믿어야 감사함으로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바울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한다. 믿음 없는 자에게는 환란이 소망이 아니라 화병을 만든다. 믿음으로 받으면 말씀이 들린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보인다. 기도할 바를 알게 된다.
 
인생의 행복은 많은 소유나 높은 지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언제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믿으라. 그러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소화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을 내게 주시는 말씀과 교훈으로 받으라. 더 많이 기도하라는 메시지로 받으라. 그러면 나를 위해 은밀하게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축복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소화하고 받을 수 있는 심령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정우 목사
하늘담은교회

토-가정의 위기극복 방법
본문 : 창 35:1~15
찬송 : 559장

어느 가정이든 위기가 있을 수 있다. 가정의 위기는 분명한 원인이 있고 의미가 있다. 알고 대처를 잘하면 그 위기는 가정의 은혜와 축복의 회복의 기회가 된다. 야곱은 딸 디나의 강간사건과 아들들의 세겜인 살육사건으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신앙적 대처로 가정의 위기를 잘 극복하며 영육간의 회복을 맞는다. 야곱의 가정 위기 극복의 방법은 우리 가정의 위기 극복 방법을 일깨워준다. 지난 호에 언급했듯 첫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이방신상을 버렸다. 이방신들이란, 라헬이 가지고 있던 라반의 드라빔, 종들이 하란에서 가지고 온 것들, 세겜 포로들이 가지고 있던 친숙한 우상들이다. 야곱은 신앙회복을 위하여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함께 한 가속(가족, 종, 세겜포로들)들에게 이방신을 섬기는 수단이었던 모든 물건들을 미련 없이 상수리나무 아래 묻게 했다. 하나님과 만남에 앞서 일종의 종교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가증하게 여기신다. 또한 우상숭배는 가정과 가문을 멸망하게 하는 근본 죄가 된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 영적 축복이 임하려면 세상에 속한 우상들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다 우상이다. 자녀, 물질, 명예, 일, 욕망, 꿈 등 수없이 많다. 이런 우상들을 버려야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은혜를 주신다. 이방신상을 버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신앙의 순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 정결케 되어야 한다. 이는 몸을 깨끗게 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삶을 정결하게 하라는 것이다. 과거에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모든 죄를 회개하므로 마음이 정결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죄를 품은 자의 간구를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 왜 가정에 위기를 맞게 될까? 그중 하나는 온갖 더러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 때문일 수 있다.
 
자신을 정결케 하는 방법은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유일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이후 죄를 자백하고 죄를 떠나므로 정결한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하는 자는 그 마음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을 만나고 가정의 위기도 극복하는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가정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모든 우상과 정결치 못한 죄들을 제거하며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기를 다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태현 목사
광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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