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것을 탐내기보다 작은 것을 아름답게 보는 눈

[ 기고 ] 기독공보 70주년 기념 크루즈 여행기- 아름다움, 여유, 그리고 눈물

고시영 목사
2015년 07월 08일(수) 10:14
▲ 선상에서 크루즈 성지순례 참가자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는 고시영 목사.

여행이란 무엇인가? 특정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그리고 즐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최고였다. 내가 이번 여행에 동행한 것은 크루즈 여행이라는 아주 특별한 여행 방법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은 그런대로 많이 해본 나로서는 새로운 방법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다를 보면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하루 종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나는 세계의 바다를 많이 보았다.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북극해, 남극해, 흑해 그런데 지중해를 보지는 못했다. 지중해는 다른 바다보다 훨씬 문명적인 바다이다. 역사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 로마제국, 동서교역, 기독교 전파, 문예부흥 운동 등등이 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지중해를 보는 것은 곧 서양 역사를 보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중해를 마치 보석처럼 아껴두었다가 아주 특별한 날에 손에 끼는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숨겨두고 있었다. 드디어 그 반지를 껴야하는 운명의 날이 왔다. 은퇴를 앞두고 지난 날을 정리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고, 결혼 40주년이 되었으며, 기독공보 70주년으로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인문학 강의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인문학 강의는 내 목회 생활에 마지막 활동이다.
 
나는 17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고 21세기형 교회를 꿈꾸면서 목회를 했다. 다른 교회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남성들을 위한 설교, 교양 있는 교인 육성, 복지 교회를 염두에 두면서 목회를 했다. 그 결과 좋은 결과를 얻었고 명예롭게 은퇴를 하게 되었다. 나는 교회 분쟁이 소위 믿음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을 보았고,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 더 위선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것도 보았다. 몰상식적이고, 일방주의며, 정리되지 못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도 보았다. 이제 교인들도 좀 세련되고, 교양 있으며, 인격적이라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문학 강의를 지난 2년 동안 매월 1회씩 교회에서 해왔다. 교재는 서울대학교에서 추천한 100권의 도서를 택했다.
 
나에게 인문학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은 반가운 일이다. 설교해 달라는 요청보다 더 기쁜 요청이다. 나는 설교를 33년 동안 해 왔다. 그러나 오늘 현실을 보면 설교는 이제 그 힘을 잃었다. 설교하는 사람도, 설교를 듣는 사람도, 창조적 긴장도 고뇌도 없다. 물론 설교는 유용하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설교는 죽었다. 삶으로 하는 설교만 남았다. 한국 교회의 희망은 목사들이 그 삶으로 설교하여 교인들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나는 상당한 기대를 갖고 여행을 시작했다. 만족스러웠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3가지를 얻었다. 첫째는 아름다움이다. 지중해는 아름다운 바다였다. 흥망의 역사를 지난 현장이지만 바다는 아름다웠다. 푸른빛의 망망대해, 그 역사를 토해내는 출렁거림, 그 속에 생겨나는 일출과 일몰, 그것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 부활이었다. 밤하늘의 달은 내가 본 일생 최고의 신비한 달이었다. 배에서 본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그것은 주황색 지붕과 희색 벽, 그리고 균형 잡힌 병행의 미가 조화를 이룬 최고의 풍경화였고, 베네치아의 골목은 좁은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의 말처럼 장엄함은 미의 극치이다. 산마르코 성당, 175년 만에 완성되었다는 두오모 성당, 나폴레옹이 유럽의 정원이라고 부른 두칼레 궁전 등을 통해 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둘째는 여유이다. 크루즈 여행은 일단 배에서 숙식이 해결 된다. 식사도 원대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루 종일 먹을 수도 있다. 침실도 필요한 것은 모두 있다. 호텔 그 자체이다. 밤에는 다양한 공연들도 있다. 공연장에 가보니 아이들이나 노인들이나 혼연일체이다. 같이 박수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나이도 인종도 없다.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여유가 거기에 있었다. 나이가 있는 곳은 오직 하나, 노천 수영장이다. 여자들이 훨씬 많았다. 모두 비키니 차림, 노인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수영장에서 젊다는 것과 늙었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물속에서 웃고 있었다. 배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충격이었다. 일광욕을 하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노부부들, 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여유였다. 나는 한국에서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셋째는 눈물이다. 나는 속으로 많이 울었다. 베드로 성당은 본래 대전차 경기 연습장이었는데 네로 황제 당시 그 광장에 기독교인들이 몸에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인간 횃불이 되어 순교했던 장소, 나는 성당의 웅장함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당시 죽어간 교인들의 장렬한 최후에 울었다. 콜로세움, 세계에서 가장 잘 구성된 건물, 그래서 이 건물이 무너지면 지구도 무너진다는 속설이 생길 정도의 견고한 건물이다. 그러나 유대전쟁을 통해서 100만 명을 죽이고, 10만 명의 유대인을 노예로 끌고 온 베스파시아누스의 작품이라 안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칭송하는 모든 것 속에는 잔인함이 있다. 역사를 보라. 큰 것은 잔인함이다. 큰 것을 동경하기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잔인함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큰 것을 탐내기 보다는 작은 것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번 여행은 바울 사도가 순교한 곳에서 끝났다. 그의 감옥, 그가 마지막으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를 쓰던 장소, 그가 목이 잘려 순교하던 그 장소, 그 바위, 나는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카타콤베 정원에서 주일 예배 설교를 했다. '죽음을 통해 얻은 승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할 때, 나는 속으로 울었다. 죽을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이 나이,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설교를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돌아왔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큰 수확이다. 누가 나에게 다시 크루즈여행을 하겠느냐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함께 같이 갑시다." 기독공보 사장 이하 직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이 있어 속으로 울어 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눈물은 곧 행복이다.

고시영 목사 / 부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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