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은혜를 잊지 말자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7월 01일(수) 09:50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 기념 동판에 새겨진 비문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 국민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받쳐 싸운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1992 년 필자가 주미대사관 근무 시절, 주한 미 8군 사령관을 지냈고, 대한민국 '육사의 아버지'라는 존칭으로 우리 국민의 깊은 존경을 받는 밴플리트 장군이 100세를 일기로 고향 플로리다에서 서거해 알링턴 국립묘지 교회에서 거행된 영결예배에서 손자인 밴플리트 3세 당시 공군 대위가 유족 대표로서 행한 짧은 조사가 23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새겨져 있다. "밴플리트 장군은 나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이자 나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커다란 발 자취는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늘 나와 함께 할 것입니다." 
밴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자 밴플리트 대위의 아버지인 밴플리트 중위가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해 압록강 상공에서 행방불명 된 후 한 살 때부터 할아버지 슬하에서 아들처럼 자랐던 밴 대위의 짧은 조사에서 한 집안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 지, 미국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나라인지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전에서 전사 3만 7000, 부상 9만, 행방불명 8000의 고귀한 희생과 1조 달러에 이르는 국민 혈세를 투입해서 우리를 공산화 침략으로부터 구해 주었다. 오로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일 뿐, 영토적 야심이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한 적이 없다. 또한 미국은 200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한국의 전후 복구와 경제개발에 아낌 없이 투입했다. '한강의 기적'은 실로 한-미 양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의 전방위적 지원에 힘입어 한국은 '무임승차'하다시피 한정된 국가 예산을 경제 발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1992년 6월 22일은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건립 모금을 위한 기념주화의 주조 행사가 워싱턴 재향군인회관에서 개최된 날이다. 미국 측을 대표해서 한미 연합사령관을 지낸 스틸웰 장군이, 한국 측을 대표해서는 현홍주 주미 대사를 대신해서 주미 대사관 총영사로 있던 필자가 참석해 첫 기념 주화 2개를 주조하는 버튼을 누르게 됐다. 행사장에는 200여 명의 참전용사들과 가족, 국방부 인사들이 참석했다. 행사가 시작되자 대기실과 행사장 사이의 커튼이 열리면서 30여 명의 상이용사들이 입장하는 순간 장내는 순식간에 숙연해 졌다. 맨 앞 줄은 휠체어가 늘어서 있고 뒤로 두 줄은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가고 눈, 코, 귀가 없는 사람, 심지어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잃고 몸통만 남은 상이용사를 가족이 품에 안고 입장하는 순간 전율과 감동이 모두를 엄습했다. 스틸웰 장군을 비롯하여 모든 참석자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죄송스럽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내가 은혜를 입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과연 이 분 들의 희생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 일이 있었던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 날의 행사는 그야말로 '절제된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되는 매우 감동적인 행사였다. 그날 이후 상이용사들의 모습과 행사장의 숙연한 광경이 나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우리가 6.25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이면에는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잃고, 사지가 잘려 나가 몸통 하나에 의지하며 일생을 그늘 속에서 살아 온 미국의 상이용사들과 그 가족들의 피와 눈물의 숭고한 희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은혜와 감사를 잊지 않는 나라, 동맹의 신의를 지키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의 마땅한 도리를 다해야 한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병사들과 가족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삼가 머리 숙여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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