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씨 이야기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5년 07월 01일(수) 09:47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오늘은 독일의 한 크리스찬 기업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가 파이트(Guenter Veit)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쯤 전이었다. 

파이트 씨의 아버지는 공업용 세탁관리 기계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의 창업자였는데, 근면과 절약이 몸에 밴 전형적인 독일의 전후세대였다. 파이트 씨는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싫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집을 뛰쳐나와 한 록밴드에 가입했으며 수년간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참석한 청년부 모임을 통해 주를 만나는 체험을 했으며 철저하게 회개했다. 방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투병중이던 아버지와 화해했으며 기업 경영도 물려받았다.

그가 경영의 책임을 맡으면서 맨 처음 한 일은 경영 원칙을 문서화하는 작업이었다. 대개 오너 2세들이 기업을 물려받으면 신규 사업 진출이나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려하는 것과 달리 그의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업을 만드느냐에 있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로 떠오르지 않았던 당시, 그는 다소 파격적인 원칙들을 정리해 문서로 공식화했다. 파이트사의 기업경영 원칙에는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일의 기본이라고 믿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또한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사회를 섬기겠다는 약속이 고르게 포함돼 있었는데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쉽게 선언하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특히 기업이 자연생태계의 일부임을 인식함으로써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선언이 눈에띄었다. 경제적 이윤의 확보라는 목표도 함께 나열돼 있었으나, 왠지 상위의 목표라기보다는 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하위 개념의 목표라는 느낌이 들었다. 토론시간에 그래도 명색이 기업인데 정말 양심에 거리끼는 돈벌이는 하나도 안하겠느냐고 따지듯 물었는데, 그는 단호하게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 경영은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나는 젊은 경제학도로서 신앙과 기업 경영이 현실에서 병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파이트 씨의 말은 진솔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최근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파이트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됐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Veit Group)는 그 동안 공업용 세탁관리기기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품질의 공업용 다리미, 스팀기, 바지정리기 등 세탁관리분야에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세계 굴지의 의류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파이트사는 꾸준한 기술 개발로 무겁고 복잡한 기계들을 사람이 몸을 구부리지않고도 디스플레이를 통해 손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본사가 위치한 란스베르그라는 남부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는 청년들에게 실무를 교육하기 위해 별도의 공장을 건설해 교육과 일자리 창출에도 열심이다. 또한 환경보호를 위해 태양광 에너지를 사용하고 타 경쟁사들보다 25%가량 에너지를 절감하는 기계들을 출시했다. 20년 전 젊은 파이트가 했던 선언들이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업 경영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트사와 같은 기업을 언론에서는 '히든챔피언'이라고부른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기가 속한 산업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숨은 강자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면 기업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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