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폐쇄, 거대한 벽에 바늘구멍 하나 뚫다

[ NGO칼럼 ] NGO칼럼

김경태 목사
2015년 06월 29일(월) 18:07

지난 6월 12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문기관인 국가에너지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7차전력수급계획안에 '고리1호기에 대한 영구정지 권고'를 내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운영 주체인 한수원에서는 6월 17일 이사회를 통해 산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고리1호기에 대한 재사용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이로써 대한민국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지 38년 만에 처음으로 상업용원자로의 사용정지 후 폐로(2017년 6월)라는 첫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마침내 탈핵사회라는 배의 닻을 올리고 첫 출항의 고동을 울리게 된 것이다.

고리1호기는 30년 사용을 목표로 도입되었던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로, 2007년 한 차례 수명연장을 해서 10년 더 사용해 오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의 대참사가 발생하는데, 총 10기의 원자력발전소 중 수명 30년 이상된 4개의 원자로가 폭발하는 최악의 원전참사를 당한다. 이 사고는 전세계적으로 생명과 안전에 대한 큰 충격을 주었고, 탈핵운동과 탈핵 국가선언들이 연이어졌다. 우리 사회에서도 원전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과 특히 노후원전은 각종 재해 및 안전사고에 취약하다는 인식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물론 경제적으로도 전혀 싸지 않다)

이런 인식들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났고, 밀양과 청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전송하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 저지에 나서는가 하면, 원자력발전의 결과로 지역주민들이 각종 질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으며, 특히 갑상선암의 연관성이 입증되는 등 시민들의 노후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이 한층 더 성장하였다. 이러한 시민들의 의식의 성장은 2015년 2월 '고리1호기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이하 부산범본부) 라는, 각종 시민사회단체 120여 개를 총망라하는 시민운동의 결집으로 나타났다. 부산범본부는 짧은 기간이지만 헌신적이었고, 마침내 시민들과 온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노후원전 고리1호기의 폐쇄라는 최고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기독교인들의 각성과 헌신이다. 원자력발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며 핵연료봉은 꺼지지 않는 불이요, 거기서 방출되는 방사선은 모든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힘이라고 인식하였다. 특히 YWCA에서는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탈핵운동에 앞장서서 헌신하기 시작했고, 한국교회는 '핵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를 중심으로 '핵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다'라고 고백하며 3년째 고리1호기 폐쇄 등 노후원전의 폐쇄를 위한 40일 단식기도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부산범본부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체도 YWCA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예장 부산 3개노회 등 지역교회들도 적극적으로 응답하였다.

물론 이러한 결과들은 더 나은 탈핵사회를 향한 물꼬를 트는 일에 지나지 않음은 분명하다. 고리1호기는 멈추게 되었지만, 또 다른 노후원전인 월성1호기는 그 와중에 주민들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장 운행을 개시하였다. 또한 7차계획안에는 고리1호기 외의 원전 22기 뿐만 아니라 삼척과 영덕 등에 신규 건설 13기도 계획하고 있다. 여전히 태양력 풍력 등의 자연에너지에 대한 비중은 미미하고, 공공재인 에너지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도 갈 길이 멀다. 지금의 성과는 거대한 벽에 단지 작은 바늘구멍 하나 만든 것뿐일 것이다.

그래도 길은 생겼다. 작은 바늘들이 가야할 길이 열린 것이다. 언젠가는 거짓과 허상 투성이인 원자력에 대한 미신을 걷어내고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을 힘차게 외칠 그대로의 작디작은 오솔길이 열린 것이다.

김경태 목사 / 핵없는세상부산기독교연합회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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