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6월 29일~7월 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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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5일(목) 09:51

월-성령을 따라 행하라
본문 : 갈 5:16~26
찬송 : 191장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면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고치는 권능과 사명을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큰 부담 없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문제는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고 하자 불안에 떨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공포에 처해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는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인도하심을 믿으며,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고 행함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첫째,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려 대적한다(17절)"고 했다. 육체의 일은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면 육체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각종 범죄를 저지르게 되므로 성령과의 관계가 다 무너져 영혼이 파멸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면 거룩한 백성이 되고, 사랑의 삶을 살게 되고,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율법 아래에 있지 않게 된다.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는 말은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의 속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만 매여 산다면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이며, 죄 사함도 구원함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망도, 자유함도, 기쁨도, 감사도 없을 것이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자유함을 얻게 되고 죄악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며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며 자유와 평안함을 허락해 주시는 거룩하신 분이다.
 
셋째,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고 말씀하고 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내 의지나 지혜나 열정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실 때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사랑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과 순종으로 좋은 열매를 아름답게 맺고 풍성하게 맺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여호와 하나님,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성령님만을 믿고 의지하여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맺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우일 목사
하의제일교회

화-기도가 해결이다
본문 : 막 9:14~29
찬송 : 364장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다. 바빠서 기도를 못하든, 병들어서 기도를 못하든, 늙어서 기도를 못하든 기도를 하지 않으면 믿음은 떨어진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기도는 신앙의 뿌리이다. 기도하는 교회가 참 교회이다. 기도하는 성도가 참 성도이다. 기도는 생명이다. 
 
다니엘은 기도에 생명을 걸었다. 그는 기도하다가 죽는 것이 차라리 기도를 포기하고 사는 것 보다 더 소중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기도를 쉬면 죽는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기도는 성도들의 생명의 줄이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예수님께서 말을 못하는데다가 청각손실, 간질병까지 겹친 자를 말씀으로 고쳐주셨다. 그리고 나니 무능했던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예수님께 물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문제 해결은 기도밖에 없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로 시작됐다. 예수님은 기도로 승리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기도로 마쳤다. 다니엘처럼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자. 베드로처럼 성전에 나와 기도하자. 바울과 실라처럼 옥중에서도 기도하자. 즉 전천후 기도를 드리자는 것이다. 과부처럼 끈질긴 기도를 드리자. 강도처럼 짧은 기도도 응답 받는다. 한나처럼 긴 기도도 응답 받는다. 삼손처럼 절박한 기도도 응답 받는다.
 
기도해도 해결이 안 되거든 자신을 점검해 보자. 왜 응답이 안 되는가? 욕심이나 하나님의 응답을 막고 있는 죄는 없는가? 회개했는데도 안 되면 아직 때가 아닌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믿음 훈련시키려고 지연시키는 것은 아닌가? 믿음의 기도는 응답된다. 기도는 성도의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다. 예수님은 새벽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은 저녁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은 철야기도도 하셨다. 예수님은 산상기도를 하셨고 금식기도도 하셨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기도할 때 역사와 기적이 일어났고, 기도할 때 교회가 부흥되었고,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었다. 기도는 시간이 없어도 해야 하고, 피곤해도 해야 하고, 병들어도 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을 잘 믿는 길도, 능력 받는 길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도 없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고, 주 예수를 믿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가 해결이다.
 
오늘의 기도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주님, 항상 기도의 등불을 밝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백 목사
비례교회

수-상업적인 신앙을 경계하라
본문 : 단 3:16~18
찬송 : 419장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선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이시며 무한대이시다. 누구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으며 그분의 사랑 안에서 끊어질 수도 없다. 우리는 주님만으로 부족함이 없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청년들은 풀무불 속에 던져졌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내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순교의 제물로 받으시기 위해 건져내지 않으실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신앙의 순결과 절개를 고수한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이 믿음 속에는 주님을 향한 절대 신앙이 담겨있다. 조건부 신앙과 거래적인 신앙은 마귀가 우리의 신앙을 넘어지게 하는 영적인 독이다.
 
에스겔 28장 12~18절은 두로 왕 속에 역사하는 사단이 타락 전에는 기름부음 받은 그룹 천사장으로 하나님의 성산에서 하나님 가까이에 왕래하였으나 왜 타락했는가를 보여준다. 무역으로 인해 강포와 죄악이 가득하여 더러워졌고,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해졌다는 것이다.
 
무역은 상업적인 거래이다. 사단은 거래와 무역에 능하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 욥을 참소하였다. 하나님은 욥의 순전을 칭찬하고 계시나 사단은 욥의 경외함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 '까닭'을 없애면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즉, 순전하여 절대적 신앙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것이 아니고 욥의 필요 조건을 충족해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어디에서 왔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사단은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사단도 매우 분주히 쉬지 않고 움직인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보면 이렇게 분주하게 다니는 이유는 자신이 삼킬 먹이를 찾기 위해서이다. 누가 사단의 먹이가 되겠는가? 신앙생활을 무역하듯 하나님께 흥정을 하듯, 거래와 조건과 필요 이유를 충족하기 위해 믿는 사람들이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찾고 경배하며 경외하는 중심이 하나님 자신이 아닌 그분으로부터 오는 그 무엇이라면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중심에는 사단의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난다. 욥은 재산과 자녀들과 건강과 아내를 잃어버려도 하나님만을 경배했다. 하나님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졌고 그분을 잃어버리는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욥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믿음을 이어가고 승리하는 가정이 되자!

오늘의 기도
 
항상 순전하고 승리하는 믿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연호 목사
세계선교훈련원 원장ㆍ평북노회

목-그리스도인, 화목하게 하는 사람
본문 : 고후 5:17~19
찬송 : 475장

오늘날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화평하고 사이좋게 살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고 또한 화목한 자의 사명을 갖고 살길 명하신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말하며, 어떤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이 사실에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적대하며 살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등을 돌리고 살아온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만민들과 화해하며 더불어 살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로 관계회복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이제 옛날의 죄된 모습은 사라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놀라운 것이다. 먼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케 해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신 것이다. 우리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과 불화한 사람들로 하여금 화목하게 되도록 우리에게 직무와 사명을 주신 것이다.
 
화목의 직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화목할 수 있도록 우리가 다리가 되는 것이다. 즉 연결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불화 속에 있는 것을 화해시키는 자로 사는 것이다.
 
그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받은 자로 이 직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된 자들로 감사와 화평의 삶을 실제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화목의 복음을 기쁨과 간절한 말로써 전하는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등지고 힘들게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은혜를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화목의 직무를 맡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둘째, 우리가 화해의 삶을 사는 자로서 화해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화해가 아닌 불화를 조장하고 어느 그룹에 가든지 모임에서 사람들 사이에 이간을 시키고 불평을 일으키는 자가 된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 불화할 때 화목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화평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6ㆍ25 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스도인의 화해의 직무를 우리 주변과 공동체 안에서 수행해 갈 때 통일을 준비하는 작은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오늘의 기도


화목의 직무를 신실하게 수행하는 종이 되어서 이 나라의 평화 통일에도 쓰임 받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일 목사
효목중앙교회

금-하나님의 능력
본문 : 롬 1:16~17
찬송 : 502장

우리사회에 기독교 이미지가 추락되어 있어 안타깝다. 교회의 각종 분쟁은 물론 목회자와 중직자의 비리가 사회에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크게 기여한 역사가 있다. 의기소침해서는 안된다.
 
한국민족사에 있어 크게 기여한 점은 첫째, 무지한 이 백성을 유식한 백성으로 깨우친 것이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세우기 전에 먼저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신 학문을 가르쳐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냈다.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한 이승만, 서재필, 조만식, 안창호, 이승훈 등이 기독교인이고, 기독교학교에서 배출된 인재들이었다. 둘째, 병든 백성을 치료하고, 건강한 백성 되게 한 것이다. 선교사들은 곳곳마다 병원을 세웠다. 전주에 예수병원, 대구에 동산병원, 부산에 복음병원, 대전에 기독병원, 그리고 서울에 제중원(현, 세브란스병원)을 세웠다. 셋째, 게으르고 가난한 백성들을 깨우쳐서 부지런하고 부유한 백성들 되게 했다. 각종 계몽운동을 벌인 것이다. 넷째, 복지와 문화를 감당했다. 그들은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봤다. 고아원과 양로원 등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구제의 손길을 폈다. 복지가 전무할 때 기독교가 그 일을 감당했다. 지금도 약 70%를 기독교, 교회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면서도 교회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 6:3)"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팔을 불지 않았다. 또한, 놀이 문화가 없는 시절, 교회는 놀이를 제공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아이들 모두가 교회에 가서 살 정도였다. 다섯째,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자유를 모르던 백성에게 참 자유를 알려주어 민주주의 국가 되게 한 것이다. 기독교가 이 민족을 위해 기여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베트남 같은 나라는 한국을 벤치마킹해서 나라의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교회의 영적, 도덕적, 정신적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베트남은 한국의 목사님을 모시고 간부들에게 교육을 시킨다고 하는 이야기를 베트남 현지에 다녀온 사람을 통해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간과하고 기독교를 비난한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이 민족사에 있어 교회가 큰 일들을 이루어 오늘이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세계 속에서 기독교가 큰 일들을 감당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발전시켜 가야 한다.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으로 인한 기쁨을 만끽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기쁨의 복음을 전파하여 사회와 민족을 더욱 구원하는 교회와 우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이 민족에게 복음을 주시고 교회가 성장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다시금 세상에 더 크게 기여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명 목사
성산중앙교회

토-낮추면 높이신다
본문 : 약 4:1~10
찬송 : 312장

'교만이'와 '겸손이'는 늘 우리 안에 공존하는 친구들이다. 교만이는 걸핏하면 성질을 내고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고 우기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분명 자신감이 있는 것은 좋은데 마지막에는 너무 강하게 주장하다 보니 사람들과 잘 싸우고 다투기가까지 한다. 겸손이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희생하고 섬기기를 잘한다. 그래서 필자는 매사에 똑똑하지만 싸우고 다투는 '교만이' 보다는 희생하고 섬기는 '겸손이'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필자의 모습 또한 종종 '겸손이'처럼 살지 못하고 '교만이'처럼 행동한다.
 
왜 사람들은 겸손이를 좋아하면서 교만이처럼 살아갈까? 첫째, 열등감 때문이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둘째, 우월감 때문이다. 나 만큼 잘난 사람이 별로 없다. 셋째, 피해의식 때문이다. 양보할 때마다 손해 본 것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넷째, 본성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고보 시대의 삶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사람이다. 신앙을 위해 이주해 왔지만 낯선 곳에 살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들의 삶 자체가 낯선 곳에 살기 위한 싸움이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며서도 삶의 환경 때문에 매일 싸우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지 교회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왜 너희에게 싸우고 다툼이 있는가'를 지적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것이 정욕에서부터 난다고 말한다. 정욕은 본능적으로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주인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인이지만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마귀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7절)"고 명령하신다. 사실 예수님을 주인 삼지 않고 나의 자유를 위해 독립하여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정욕대로 하는 것을 마귀는 늘 은밀히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는 자유다 너의 정욕대로 해라 하나님께 복종하지 마라 기도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넘어진다. 싸우라 다투라.' 이것이 마귀의 은밀한 사주를 받은 정욕에 의해 이루어짐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교만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가? "기도하라(구하라)"고 하신다. 주 앞에서 낮추라. 다툼에 있어서 3가지를 금해야 한다. 첫째, 교인들을 상대로 싸워서는 안된다. 둘째, 교회에서 싸워서는 안된다. 셋째, 교인들과 승패를 보려고 해선 안된다. 주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주님은 나를 높이신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안의 다툼을 제하여 주시고 겸손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선인 목사
청림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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