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6월 22~27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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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17일(수) 11:33

월-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나니
본문 : 약 3:5~12
찬송 : 288장

혀는 무서운 무기이다. 성냥개비 하나의 작은 불이라도 큰 산을 불태운다. 그와 같이 한 마디의 이상한 말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말에 실수하지 않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첫째, 혀는 길들이기 어려우나 나의 마음이 변화되고 절제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어떤 사람은 동물이 너무 좋아서 사람보다 오히려 낫다고까지 한다. 잘 훈련받은 개는 말을 잘 알아듣고 순종한다. 그런데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고,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일반 동물과 달리 사람의 혀는 타인이 길들일 수가 없다. 그럼 누가 해야 하는가? 자신이 깨닫고 고쳐가야 한다. 자신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조절해야 한다.
 
또한 혀에 악과 독이 가득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죄성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마음 깊은 곳에 죄성이 뿌리박혀 있으니 악한 말과 독한 말이 계속 나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변해야 한다. 심성이 좋은 것으로, 심성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심성이 남을 축복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심성이 이렇게 바뀔 때 말이 달라진다.
 
둘째,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우리는 혀와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감사하는 마음의 고백이 입술로 나올 때 얼마나 아름답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가? 그런데 이 혀로 사람을 저주하고 비방한다면 얼마나 모순인가? 그리스도인인 내가 동료나 이웃을 시기 질투하며 욕하고 비방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 하나님을 찬송하던 그 입술로 남을 저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셋째, 그리스도인으로서 감사와 칭찬, 격려와 축복하는 말을 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된 하나님의 아들 딸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신앙인으로서 사랑하고, 기뻐하고, 화평하고, 찬송과 축복, 감사와 칭찬의 말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만약 악평과 비방과 불평, 거짓된 정보를 퍼뜨린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귀가 부추기는 것이요, 이기적인 죄성에서 나오는 잘못된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서, 늘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찬송과 칭찬과 진실과 축복 그리고 감사와 격려가 넘치도록 함이 마땅하다. 늘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마음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찬송과 아름다운 말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입술에서 항상 찬송과 감사와 격려와 축복만이 나오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일 목사
효목중앙교회

화-의인들이 모여 사는 가정
본문 : 시 1:1~6
찬송 : 360장

주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과 주님의 의로운 생명과 길을 따라 사는 의인은 다르다. 복 있는 사람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날 일부 신자들의 생각은 편협되고 곡해되어 있다. 성경에 나오는 부정적인 것들은 모두 불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믿고 성경에서 말하는 긍정적이고 축복스러운 것들은 모두 자신들의 몫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왜 파괴되었으며, 소아시아의 초대 일곱 교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던 평양의 교회들과 이북의 교회들은 왜 자취가 사라졌는가?
 
시편 1편의 복 있는 자는 주님을 영접한 신자를 의미하진 않는다. 주님 앞에 의인으로 산 성도에게 성취되는 말씀이다. 주님의 자녀 중 세 가지를 하지 않고, 두 가지를 행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다. 어떻게 의인의 모임에 들어가는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첫째,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해야 한다. 꾀의 원문을 보면 '의견, 조언'을 의미한다. 즉, 사단이 우리를 범죄하게 유혹하는 악한 생각과 사상을 모두 따르지 않아야 한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한다. 악한 의견과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행하는 방법들을 물리쳐야 한다. 셋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오만한 자리란 악한 생각과 마음에서 죄인들의 방법과 노선을 행하므로 얻은 결과들이다. 창세기 14장에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게 사로잡힌 롯을 아브라함이 구출할 때 그는 왜 소돔왕의 물품을 거절했을까?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백성들을 떠나 주님은 왜 홀로 산으로 가셨는가? 불의하고 죄악된 방법으로 얻어진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오직 행하여야 할 두 가지는 첫째, 율법을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즐거움은 노력으로 되는 것 이상이다.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이 즐거워진다.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율법을 즐거워함은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둘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묵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주야로 그분과 말씀이 묵상이 된다. 시편 1편에서 약속하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인정받아 의인들의 모임에 참예하는 가정들이 되자.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의로운 성도에게 복이 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의로운 성도들이 모여 사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은 복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연호 목사
세계선교훈련원 원장ㆍ평북노회

수-차별이 아닌 구별
본문 : 약 2:1~9
찬송 : 453장

차별과 구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본문의 4절과 8절 말씀을 살펴보자.
 
차별이란 싫어하는 마음으로 판단하는 것이요,(4절) 구별이란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내 몸을 사랑하듯 대하는 마음(8절)이다. 예수님은 나를 구별하여 세우셨다. 나는 차별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차별을 받고 있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차별하면서 살아 갈 때가 종종 있다. 학력, 외모, 재력, 지위, 나이 등을 보면서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하곤 한다. 신앙생활의 즐거움을 무엇일까?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차별 없으신 사랑을 누릴 수 있다.
 
야고보 사도 시대에 교회는 사람을 차별하였다.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2절) 부자는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가난한 자는 발등상 아래로 안내하였다. 이런 교회에서 어떤 일이 더 잘 일어났는가? 당시 부자들은 교회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고(6절) 성도들의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였다.
 
부자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물질을 동경하고, 부자를 특별대우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그것은 교회가 물질주의에 물들 때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렇게 차별하는 교회를 보고 야고보는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죄를 범하는 것(4절)"이라고 탄식하였다.
 
오늘 우리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는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을 최고의 법으로 지켜야 할 곳이다(8절). 최고의 법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바탕에 두고서 행해야 하는 기본법이다.
 
오늘의 성도들은 기본법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니 교회에서도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관계의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며 생명력을 잃게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여 낮게 여기고, 차별하지는 않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금 기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나를 구별하여 사랑하신 그 사랑처럼 우리도 차별하지 않고 이웃을 향하여 구별하며 사랑하는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선인 목사
청림중앙교회

목-공포를 이기는 길
본문 : 사 41:8~15
찬송 : 496장

메르스로 인한 공포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전염병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나, 더 무서운 것은 공포심이다. 나폴레옹은 "용기는 사람을 번영의 길로 이끌지만, 공포는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고 했다.
 
오늘날 이 나라에 드리워져 있는 두려움을 물리쳐야 한다. 두려움은 몸과 마음은 물론 생활까지 파괴하기 때문이다. 잠언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임한다고 했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잠 10:24)"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라고 말했다.
 
최근 메르스에 걸렸다가 완치된 77세의 김복순 할머니는 20년간 천식약을 복용해 왔다고 한다. 평택 성모병원에 천식으로 입원했다가 감염돼 폐렴 증상까지 나타났지만 메르스를 이겨냈다. 완치판정 뒤 "나 같은 노인도 이겨냈는데, 그렇게까지 겁먹을 필요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성경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아 신앙인이신 것 같다. 두려움을 이기면 질병도, 문제도 이길 수가 있다. 위협을 느낄 때에 두려움이 자리잡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공포심이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성공적 인생의 필수 요소는 무엇일까? 마음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제거하고 극복해 가는 것이다. 담대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두려움에서 자유할 수 있는 비결은

첫째,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고 굳게 의지하면 된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둘째, 죄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죄 때문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게 되었다. 죄를 지어 관계가 단절된 이후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있어 실존적으로 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일이 있으면 불안에 사로잡히고 공포심을 갖는다. 죄의 해결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주님의 보혈이 평안을 제공하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준다. 주님의 보혈은 능력이 있다.


셋째,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이다. 기도는 할수록 새 힘을 받고 능력자가 되게 한다. 담력을 갖게 하고, 자신감으로 충만케 되고, 평안하게 한다. 또한 말씀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평안을 갖게 한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우리를 붙들어 준다.

넷째,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통해서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 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하면 용기가 생긴다. 이 나라 국민들이 속히 모든 두려움에서 놓여나기를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에벤에셀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을 도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속히 평안을 되찾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명 목사
성산중앙교회

금-고넬료는 어떤 사람인가

본문 : 행 10:1~35
찬송 : 218장

고넬료는 이달라야 부대의 백부장으로 수하에 1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린 이방인 장교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 되었고, 존경을 받고,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는가 살펴보자.
 
첫째, 고넬료는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제하고 기도한 사람이었다.
 
고넬료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이었고 경외하는 의인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을 사랑할 줄 알았고 섬김의 도리를 다했다. 백성들이 배가 고플 때 먹여주었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 사람은 형제와 이웃에게도 사랑의 모범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없다. 나라를 일으켜세우고, 사회를 변혁시키며 죄 많은 영혼을 회개시키는 길은 믿음의 기도밖에 없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시간이요, 응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둘째, 고넬료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고넬료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욥바를 보내어 베드로를 청한다. 말씀을 들으려고 베드로를 불러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며 육적인 만족만을 얻으려는 세속적인 축복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온 우주만물의 창조자로서 살아계신 능력의 언어이며 사랑으로 구원하신 영적인 축복의 언어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은혜를 받는 것이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간절히 듣고자 했다.
 
셋째, 고넬료의 신앙모범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고넬료는 온 집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 가이사랴에 있던 베드로를 자신의 집에 들였을 때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듣게 한 것이다. 또한 고넬료는 예배를 드리고자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가까운 사람부터 온 백성들에게까지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신앙의 사람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일치를 이루고 인정을 받아야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신앙이란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언제 어디서나 성실하고 진실 되게 살아갈 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고넬료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모범이 되는 신앙인으로 살며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우일 목사
하의제일교회

토-순종이 해결이다
본문 : 눅 5:1~11
찬송 : 302장

진실한 믿음의 기도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신 것은 순종의 표본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시작된 구속의 역사는 믿음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고, 산 믿음의 표시이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의 순종했다. 즉 제자됨의 시작은 순종이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실 때 배와 그물을 내버리고 즉시 따른 것이 제자 입문 자격이었다. 응답, 기적, 축복 그리고 신앙의 성숙은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노아가 순종하여 구원받았다.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본토와 친척을 떠났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도 하인들의 순종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신 순종의 모델이다. 왜 복을 못 받고 응답이 없는가? 순종이 없기 때문이다. 순종은 산 믿음의 증거이다.


순종하는 베드로는 물고기 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히 여겼다.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면 그만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그 받은 복에 자빠지고 엎어져 버린다. 베드로는 두 배에 가득히 고기를 잡고도 도취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다. 잘 못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건강하게 되고 물질의 복을 받게 되었는데 교회도 교역자도 이웃도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최고라며 자랑하면서 하나님 앞에 제대로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명의 나병환자와 같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보여지기를 바란다.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
 
교회는 가난해도, 못 배워도,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을 세워 놓으면 부흥되고 복을 받는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이 순종을 얼마나 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순종하면 성읍에도, 들에도, 자녀에게도 짐승의 새끼까지도, 우양의 새끼까지도, 떡 반죽 그릇에도,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하셨다. 그것 뿐이 아니다. 대적들이 거꾸러지고 만사형통이다. 이를 믿으시기 바란다.
 
응답을 기다리거든, 해결을 원하거든, 쓰임받기 원하거든 순종하자. 순종이 해결이다.
 
오늘의 기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순종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태백 목사
비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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