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3000호특집> 지진…해일…태풍 등 재해로 고난 받는 세계인들과 함께

[ 지면으로 보는 기독공보 ] ⑦ 전 세계 재난 현장을 지키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5년 06월 15일(월) 17:34
   
▲ 지난 2009년 아이티 지진 구호 모습.

"지난 2002년 6월 14일 오후 2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차량 좌측 5미터 거리에서 아프가니스탄 사람 2명이 차를 탄 채 총을 쏘며 접근하는거예요. 우리 일행은 광야에 있는 난민캠프에 빵과 생필품을 전달하러 가는 중이었거든요. 한 차례 위협사격을 한 후 본격적으로 20여 발의 총을 발사했어요. 총격은 우리의 차량 두 대 중 소형버스에 집중됐는데 잠시 후 그 차의 뒷 문을 여니 피비린내가 확 풍기는거예요. 빵을 나르기 위해 뒷 자리에 탑승했던 현지인 인부가 오른쪽 정강이에 에서관통상을 당했더라구요.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며 그때부터 필사의 도주가 시작됐는데 당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서 땀이 흐릅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본보 기자로 근무한 이상훈 목사(새한국중앙교회)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난민구호 취재 당시 현지 강도들로부터 총격을 받았던 절체절명의 순간을 회고했다.
 
위의 사례는 본보 기자가 재난 현장을 취재하며 겪은 여러 해프닝 중 하나다. 본보 기자들은 전세계에서 기록적인 재난이 발생할 시 현장을 찾아 고난 받는 세계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리고,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하는 총회와 기관, 교회들의 구호활동 소식을 전해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재난 본격 취재
 
본보의 해외재난 현장 취재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그 첫번째는 2001년 1월 26일 인도 구자라트 (Gujarat) 주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현장. 2만5천여 명이 사망한 죽음의 현장에 파견된 본보 장창일 기자는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 더위 속, 전염병의 공포가 만연한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도인들의 아픔을 보도했다.
 
그 다음해인 2002년에는 본보 표현모, 이상훈 기자가 시차를 두고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에게 긴급구호를 하는 총회와 영락재단과 함께 현장 취재에 임했다. 당시 세계정세는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을 필두로 하는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에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감행한 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은 2001년 말 CIA 정보기관 첩보원과 미군 특수 부대를 아프가니스탄에 투입, 반탈레반 민병대를 지원해 북부 동맹이 카불을 함락하고,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문이 열리면서 수많은 구호단체들이 수년간 고통 받아온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 지원에 나선 것. 본보도 이러한 추세 속에서 연이어 두 명의 기자를 현지 파송했다.
 
이중 이상훈 기자는 앞서 언급한대로 현지 강도의 총격을 받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극한의 경험을 했다. 이 기자에 앞서 5월 취재를 떠났던 표현모 기자는 취재 중 유엔군 탱크와 장갑차를 촬영하다가 탈레반 잔당으로 오해를 받아 유엔평화유지군에 체포를 당할뻔 하기도 했다.
(참고로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종족 중 두번째로 많은 하자라 족속의 외모가 극동 아시아인과 유사하다.)

   
▲ 지난 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난민촌 모습.


 
2004년 12월에는 지진 해일로 인해 인도네시아 반다아체(Banda Aceh) 일대에 16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자 본보 진은지 기자가 여성으로는 처음 재해구호 현장 취재에 임했다.
 
2009년부터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의 이상현상으로 세계 각국에 잇따라 큰 재앙이 발생했다. 2010년 1월 12일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인 아이티에 관측 사상 최고 강도의 강진이 발생해 대략 50만 명의 사상자와 180만 명의 이재민이 생겨났다.
 
본보는 1월 사회봉사부 간사와 함께 현장에 기자를 급파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를 중심으로 한 현장에는 건물들이 마치 손으로 부숴놓은 장난감처럼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곳곳에는 건물 더미에 깔려 죽은 시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나뒹구는 시체, 전염병의 위험도 무릅써야
 
재해지역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시체와 오염물들로부터 발생하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 것. 또한, 대부분 대규모 희생은 개발도상국 내지 후진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 정부에서는 시체를 제대로 매장하지 못해 콜레라, 말라리아, 이질 등의 질환 감염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티에서는 이러한 난점들이 가장 극심하게 경험된 취재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교단 산하 교회들은 36억원이 넘는 기록적인 모금으로 고난 당한 지구촌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11일에는 이웃나라 일본에 엄청난 지진강진과 그로 인한 지진해일이 발생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여 명, 피난주민이 33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자 본보는 사고 발생 5일만에 일본 현지에 기자를 파견했다. 그러나 기자가 현지 취재를 가기로 한 즈음 지진해일이 덮친 센다이의 핵발전소에서 방사능 유출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3월 16일 일본의 하네다공항에는 일본을 벗어나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사이에 오히려 입국을 하는 외국인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당시 도쿄의 일본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짐을 쌓아둔 채 일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상황에서 교단 파송 선교사들은 오히려 현지 교인들을 다독이고, 고난의 현장에 남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자아냈다.
또한, 피해 현장을 돌면서 특히 전교생 대부분이 쓰나미의 파고에 희생된 오가와초등학교 앞에서는 엄청난 비극에 기자와 간사, 선교사들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현장의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필리핀 남동부 지역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으로 발생한 이재민을 돕기 위한 교단의 재해구호에 박성흠 기자가 함께 해 타클로반 인근 오르목과 세부 북부지역에서 이재민 2000여 명에게 쌀 등 구호품을 배부한 구호활동을 보도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 25일 네팔에 진도 7.8의 지진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본보 신동하 기자가 정영택 총회장, 총회 사회봉사부 이승열 총무와 함께 현지를 방문했다. 피해 규모가 크고 지역이 산악지대였던 만큼 복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단적 차원의 애도 표현과 관심을 표하기 위해 총회장까지 참여했던 이례적인 재해구호 방문이었다.

그러나 네팔은 알려지다시피 최악의 고산지대로 청년들도 심한 피곤을 느끼고 때로는 고산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 바쁜 일정으로 고산지대를 방문하던 정영택 총회장이 저산소증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어지러움을 표하며 거동이 어려워진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총회 방문단 일행은 현지인들과 선교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강행군을 하다가 마지막 도착지 100m 지점에서는 젊은 기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총회장을 업고 산길을 올라가기도 했다.
 
전세계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 지구촌에서 가장 주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독자들에게 고통의 현장을 알리고, 이들을 돕는 아름다운 손길을 보도하는 일에 본보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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