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좋은 만남

[ 예화사전 ] 예화사전

김영걸 목사
2015년 06월 15일(월) 16:45

인생을 살다보면 좋은 사람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좋은 부모, 좋은 스승, 좋은 친구를 만나야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받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좋은 동역자를 만나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일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평택대학교 전신인 피어선 기념학교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더 피어선 박사(1837~1911)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한 설교자이자, 초교파 선교운동가였다. 피어선 박사는 아도니람 저드슨 고든(1836~1895), 드와이트 무디(1837~1899), 조지 뮬러(1805~1892), 찰스 스펄전(1834~1892), 존 워너메이커와(1838~1922) 동시대 친분을 나눴던 분이다.

아더 피어선은 13세때 부흥집회 참석하여 회심하게 되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뉴욕주 빙헴턴장로교회, 디트로이트의 포트스트리트장로교회, 펜실베니아의 베다니장로교회 등에서 목회를 하면서,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케직사경회 강사로 활약했다. 스펄전이 건강을 잃게 되었을 때 그를 대신하여 메트로폴리탄침례교회 강단을 2년간 지키기도 하였다.

아더 피어선 박사와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의 첫 선교사 언더우드가 신학교 재학중일 때 아더 피어선 박사가 신학교에서 설교와 강연을 자주 하였다. 언더우드는 아더 피어선의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고,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된다.

1885년 조선의 선교사로 온 언더우드는 1887년 11월 아더 피어선에게 편지를 쓰면서 신학교 시절의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아더 피어선에게 지금 조선의 문이 열려 있는데 왜 미국교회는 그것을 모르고 선교지원을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선교를 지원해 줄 것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아더 피어선은 조선의 기독교 선교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그 현장을 보고 싶어했다. 그러던 중 1910년 11월에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선교지 방문이 된다. 아더 피어선 박사는 조선을 방문하면서 남대문교회 헌당식 참여, 승동중앙교회 방문과 설교와 강연을 은혜 가운데 진행하게 된다. 조선교회의 선교현장을 직접 목격한 아더 피어선은 성경교육이 조선을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선교사들의 요청에 의해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6주 정도 조선 방문을 마치고 1911년 1월 조선을 떠날 때 그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어 있었고, 귀국 후 1911년 6월 74세의 일기로 별세하게 된다. 피어선성경학교는 피어선 박사가 죽은 후 그의 동료, 후배, 선교사들의 모금으로 세워지게 된다. 이때 중요한 후원자 중에 한 사람이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이다.

필자는 피어선성경학교는 피어선박사가 직접 모금해 건축한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별세하기 1년전에 조선을 방문했던 그의 선교열정, 그의 별세 후 성경학교 모금을 계속해서 피어선박사의 꿈대로 조선에 성경학교를 건립한 동역자들, 더 감동적인 것은 그의 이름을 따서 성경학교를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김영걸 목사 / 포항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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