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100회 … 개혁하는 '개혁 교회'인가?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임규일 목사
2015년 06월 01일(월) 16:24

최근 유난스럽고 급격한 현상으로 한국교회 교인들의 유럽 도시 여행객이 부쩍 늘어난 일을 지적하고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종교개혁 역사유적지 순례가 새로운 관광 상품이 되어 있고, 여러 기관과 단체 또는 개개인들의 여행 러시 현상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순례요 탐방인지, 실제로는 관광이고 사진 찍어 오기 경진대회인지 모를 일이다. 개혁의 역사 현장을 다녀왔다 하여 저 마다 교회 개혁의 기수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 2017년에 이르도록 곳곳에서 누구라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세워 많은 모임과 행사와 선언과 활동과 사업이 펼쳐질 것이다. 제목과 명분과 의의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수북하고 넘쳐나는 일들이 개혁을 이루거나, 교회를 얼마나 새롭게 할까?

개혁 없는 개혁의 구호와 그 공허한 행진

올해 교단 총회는 100회 총회가 된다. 그동안의 일들, 최근의 일들의 여러 경우들을 또 언급하고 일일이 지적할 것 없이 100회 까지의 일들은 100회로 모두 마감하고 떨쳐 버렸으면 한다. 그동안 그토록 해왔으면 어느 지방의 말처럼 "많이 먹었으니, 마 그만해도 됐지 싶다" 떨구어 버리고, 101회 총회부터 총회 2세기는 그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갔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총회장 선거 관행과 행태, 매회 편한 날 없는 총회 연금 관련 일들, 몇몇 대형 교회들의 분쟁과 다툼과 법정 송사, 총회장 선거 보다 더 치열하고 조잡한 각 부와 기관의 임원 선출 백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집단과 정치 세력화하여 총회를 농단하는 이들의 폐해 등등 언제 까지 계속하고 이어갈 일인가? 이런 것이 그렇게도 목숨 걸고 지키며 이어나갈 지고지순한 전통이고 권위이며 관행이고 우리 총회의 정신이고 가치인가? 아니면 그만두자는 것이다.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물려줄 역사와 전통이 아니라면 그치자는 것이다. 계속 하려드는 나쁘고 사악한 무리들이여!

총회나 노회는 교회에서 출발하고 교회를 위하여 있으며, 어디 까지나 교회들의 협의체이고 '협의의 과정'으로 존재할 터이다. 교회는 모름지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바로 그 교회에서 파송한 총대들에 의해 노회와 총회는 구성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협의기구로서 역할만 다하면 된다. 그 맥락에서 치리질서도 형성될 것이다. 이 맥락을 떠난 위계질서나 권력질서로 저 높은 곳에서 교회를 대상화 하고 주구화하거나, 하수인 부리듯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이런 이반현상이 두드러지고 권력과 이권세력화 하려는 허세와 허위의식이 지나치다. 그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총회장 되기, 부장이나 위원장 되기 질병'에 빠져들어 있는 이가 권역별로 줄을 서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순서와 차례를 자기들 끼리 다 정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눈먼 행진이 아닐 수 없다.

욕망덩이들의 눈먼 행진은 멈춰야 한다

지금 시대와 현실의 갖가지 징후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경고하고 있는가? 올바르게 서지 않으면 모두 망하고 무너질 뿐이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기이다. 때를 놓치거나 비껴가면, 그 때가 우리를 버리고 나아갈 것이다.

600년 전, 1415년 7월 6일에 순교한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의 말이 자꾸 가슴을 울린다. "나는 어렸을 때 자신의 욕망으로 빨리 사제가 되어 좋은 집에 살며,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알게 되면서 그것이 악한 욕망임을 알았다."

그는 그렇게 그 악한 욕망의 경우들을 개혁하는 일에 나아갔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악한 욕망덩이인지도 모르며, 성경을 손에 들고도 성경을 알고 있지 못함이 아닌지, 그래서 맨날 허위허위 이 노릇인지 모를 일이다.

임규일 목사 / 만성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