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후원회의 발족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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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25일(월) 16:56

1985년 산하시설 평가 사전조사 결과에 따라 KNH 루어스 총무는 적극적인 자립대책을 마련하고 교회와 지역사회 자원 동원을 노력 하라고 권면했다. 이러한 권면이 있기 전에 이미 1985년부터 교회와 지역사회 자원 동원은 시작되고 있었다. 1년 동안 얻은 결과가 한아협 1987년 총회에서 보고됐다. 한아협 임원들은 국내 모금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며, 국내 모금을 KNH 후원 회계와는 별도 회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1987년 4월 16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국내 후원자들이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 이름은 '작은자후원회'였다. 이 이름은 한아협의 소식지 창간호 '지극히 작은 자 운동'이라는 황화자 총무의 글에서 비롯됐다. 

작은자후원회 초대회장으로 노량진교회 백옥숙 권사가 선출됐다. 부회장으로는 연동교회 김행자 권사와 권순현 권사가 선임됐다. 회계 연동교회 황삼남 권사, 부회계 여전도회 서연합회 총무 조봉숙 권사, 부서기 종암교회 이민경 집사, 감사 정봉덕 회원, 이준필 회원이 각자의 책무를 맡았다. 이로써 후원회가 조직됐다. 작은자후원회 사무 행정은 한아협 사무실에서 처리됐다. 1988년 한아협 총회에서 이 후원회는 분기별 모임을 갖는 '작은자운동 가족모임'이라 소개됐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자 운동은 1990년 12월 10일 극동방송 '하나되게 하소서' 시간을 통해 소개되며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 작은자후원회는 'National Fosterparent's Association(NFA)'이라는 영문 표기로 1987년부터 KNH에 보고되었다. 이와 함께 이 작은자운동도 'National Fostership'이란 영어 표기와 NF라는 약칭으로 KNH에 보고됐다. 

1987년 4월에 발족된 작은자후원회의 정관은 1987년 5월 7일 제1회 임원회에서 작성됐다. 이 정관 제2조에 의하면 독일 듀이스버그에 위치한 KNH 선교기관과 선교협력 관계를 갖고 있는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 소속 교회를 통해 저소득층 아동을 후원하는 복지선교사업을 육성시키는데 후원회의 목적이 있었다. 후원자를 찾고 모금활동을 하는 것은 작은자후원회가 결성되기 전부터 한아협 사업 중 하나였다. 작은자후원회 결성으로 한아협 발족 7년 만에 이 사업이 현실화됐다. 그러므로 작은자후원회와 한아협은 별개의 조직이 아니었다. 한아협은 작은자 후원회의 존재 이유가 됐으며, 작은자후원회는 그동안 미진했던 사업을 활성화시키므로 한아협에 활력을 불어넣는 조직이었다. 이것은 1986년 '선교와 사회복지' 창간호에 실린 황화자 총무의 글 '지극히 작은 자 운동'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자신들의 아동복지프로그램을 통한 선교적 자세는 어떠하였습니까? 이제는 지난날 우리의 모습을 재점검하면서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운동(To the Least Movement)으로서의 한아협 사업이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재정립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자후원회와 한아협의 밀접한 관계성 때문에 작은자후원회 초대 임원들은 1987년 5월 우리나라에 온 KNH 회장과 만났다. 그리고 1987년 10월 한아협 운영위원회 임원들은 작은자후원회 회장을 한아협 운영위원으로 추대했다. 그래서 황화자 총무는 이 작은자운동을 '작은자복지선교회 20년사' 145쪽에서 KNH와 한아협의 후원사업으로 소개하며 작은자운동을 KNH 사업의 범주 내에 두었다. 

한국, 필리핀, 인도와 같은 몇몇 KNH 협력 기관들은 국내 모금을 통한 결연 프로그램을 발전시켜왔다.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는 1985년에 모금 사업을 시작해 '작은자운동'이라 명명하고, 전국의 불우한 학령전 아동,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직업기술학교 학생 및 근로 청소년을 돕고 있으며 나아가서 프로젝트 결연을 통해 개척 교회에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유아원들을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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