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공존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5월 25일(월) 16:39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국토가 분단된지 어언 70년이지만 남북한은 여전히 엄청난 군사비를 투입하며 대치하고 있다. 남한이 아무리 화해, 협력을 바탕으로 평화공존을 추구하더라도, 북한이 적대, 대립을 바탕으로 '남조선 적화통일'을 혁명목표로 추구하는 한 남북한 관계는 '적대적 공존관계'일 수밖에 없다. 조중(朝中) 동맹, 통일 비용, 북핵 등에 비추어 볼 때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도 쉽지 않으며, 한미동맹, 중국의 한반도 전쟁불원(戰爭不願), 북한 경제력 등을 감안하면 북한의 적화통일도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 

국토분단이 미-소 간 동서냉전의 산물이라면, 휴전체제는 미-중 간 패권경쟁의 산물이다. 탈 냉전 이후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첨예화 되고, 물밑에서 중-일 간의 패권경쟁이 태동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19세기 말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주한미군이 중-일 간 패권경쟁의 균형역을, 또한 한반도가 미-중 간 패권경쟁의 완충역을 수행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이 줄고 있다. 

중국이 겉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만 주한미군의 균형역이 사라지면 중국이 미, 일을 상대로 동시에 패권경쟁을 벌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서 중국이 국정 제일목표로 추진해 온 '경제대국화'의 꿈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중국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상당부분 외교적 수사(diplomatic euphemism)라 할 것이다. 

한국이 외교를 수행함에 있어 유념해야 할 두 가지 제약이 있다. 북한이 대남관계에서 철두철미하게 적용하는 '남조선 배제정책'의 민족 내부적 제약과 미-중 간의 '전략적 묵계'의 외부적 제약이다. 전자는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협상하되 한국에게는 재정부담(원조탈취)만 지게하는 정책이며, 후자는 미, 중 양 강대국이 중대 사안을 한국을 제외한 채 미, 중 간의 묵계만으로 처리하는 경우이다. 

한국이 자신의 국력을 초과하는 '자주외교'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경우 북한에겐 한-미 간 및 한-중 간 이간을 통해 한국을 양 강대국으로부터 따돌리면서 '남조선 배제정책'을 보다 쉽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미, 중 양 강대국이 원하는 최선책은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배타적 영향권 아래 두는 것이지만 양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됨으로 인해 최선책이 배제된 차선책으로서 한반도 분단 상태의 현상유지를 원한다고 볼 수 있으며, 외교적 표현으로 '한반도 평화공존'이라 할 수 있다. 미, 중 양 강대국이 겉으로는 한반도 통일을 주장하지만 이는 국제정치를 의식한 외교적 수사일 뿐, 한반도를 둘러싸고 양 강대국이 첨예한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 통일의 길이 순탄치는 않다. 

문제는 북한의 경제위기이다. 체제를 유지하는 한 개선의 길이 없다. 남조선을 적화해서 남한경제를 통째로 차지하는 수밖에 없지만 주한미군과 중국의 남침전쟁 반대로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하고, 한국사회에 친북좌경세력을 양산해서 선거에서 친북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도록 대남정치공작에 '올 인'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북한 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2020년경 최대 불만세력인 '장마당 세대'가 세대교체에 의해 북한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는 불가항력적 자연현상이다. 북한 위정자들로서는 적화통일을 포기하고 '북핵'을 체제유지 수단으로 고수한 채 남한과의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남, 북한, 미, 중 네 나라 모두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공존이 실현되면서 '북핵'이 서서히 역사의 뒤 안 길로 사라지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미-중 간의 한반도 평화공존 묵계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북 경제지원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게 되어 있는 입지를 활용해 네 나라 모두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공존이 정착되도록 '가교역'을 수행하고, 후일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전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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