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에서 윤리는 제 기능 발휘할 수 있는가

[ 말씀&MOVIE ] 말씀 & 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5월 25일(월) 15:53

<모스트 바이어런트> 감독 : 챈더, 드라마/범죄, 15세, 2015
 

원제는 'A Most Violent Year'로 '가장 끔찍했던 시기'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전개되는 상황을 암시하는데, 배경이 되는 시기와 장소는 1981년 미국 뉴욕이다. 시기적인 배경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어 알아보니 1981년은 미국 뉴욕에서 범죄율이 최고에 달했던 때라고 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감상을 위한 팁으로 범죄율이 최고로 달한 그 시기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라고 준 사인이다. 범죄율이 최고에 달한 때란 사람들이 사사로운 범죄를 일상으로 경험하는 때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바로 이런 시기에 주인공 아벨(오스카 아이작)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벨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온 이주민으로 오일 사업을 하는 정직한 사업가다. 비록 아내의 도움을 받아 갱스터였던 장인의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아벨은 처가의 기업운영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길을 걸었다. 이주민의 신분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어떤 불법과도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걷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정직한 기업윤리가 통했는지 사업은 나날이 신장했고, 사업 확장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계약을 하고 잔금 지급을 앞두고 있다. 아벨이 느껴야만 하는 계약 이행의 심리적인 압박을 표현하기 위해 계약자를 유대인으로 설정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회사의 운명을 놓고 사방에서 입질을 하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검사는 회사 운영의 부정을 단서로 잡아 기소하고, 오일 탱크로리는 범죄자들에 의해 연거푸 강탈 당해 회사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운전사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총기 소지를 허락해야 한다는 주장을 그토록 거부했음에도, 이를 위반한 운전수가 불법으로 총기를 사용하여 경찰 수사를 받게 된다. 회사 지시에 따른 일이 아님을 입증하지 않으면 회사가 위기에 놓일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그토록 믿고 있던 은행이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 바로 이런 극한 상황으로 아벨을 밀어 넣으면서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이렇다. 아벨은 기업윤리를 어기지 않고 기한 내에 잔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아벨이라는 이름은 성경 속 '아벨'을 떠올리게 한다. 평소에 선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가인의 곁에서 선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벨'은 결국 가인에 의해 생명을 잃어야 했다. 본인 스스로는 삶의 정도를 지키며 살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살았지만, '가인'에 해당하는 주변의 상황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극한 상황으로 아벨을 내몰고 있다. 회사의 미래는 물론이고 가족의 행복까지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은 정도를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자부심을 갖고 지켜온 기업윤리를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기한 내에 잔금을 지불할 수 있기 위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심지어 고리의 사채를 통해서라도 부족한 금액을 마련하려고 한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갱스터인 처남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정당한 이자를 지불하고 돈을 빌리는 일은 설령 불법이 아니라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이라 맘이 편할 수 없다. 바로 이 때 아벨은 그동안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던 아내로부터 기업윤리에서 벗어나는 제안을 받는다. 아벨의 윤리능력은 변함없이 발휘될 것인가, 아니면 불법의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만일 이 영화를 윤리적인 상황을 설정하기 위한 상황극으로 이해하면, 상황윤리에 대해 많은 토론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벨의 선택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감독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음을 내비쳤다. 다시 말해서 아벨은 불법이 일상으로 범해지는 현실에서 실용적인 차원에서 불법적인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감독은 그런 행위가 다만 구멍난 부분을 땜질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아벨의 정직한 기업윤리를 위협하며 생존을 위해 임시방편의 불법행위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당시의 시대상이다. 정도를 지키기 위한 아벨의 노력이 힘들어질수록, 그만큼 사회와 시대가 악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시 말해서 1981년 미국 뉴욕의 상황을 재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인 서술이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한 시대를 경험하게 하면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연출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불법적인 상황은 불법적인 행위를 강요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지위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불법이 판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윤리의 정도를 지키며 사는 일은 얼마나 가능할지, 또한 교회 안에서 신앙의 정도를 지키며 사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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