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소명이라면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5년 05월 06일(수) 15:49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독일어에서 직업은 '베루프 (Beruf)'라고 하는데 '부르다(Ruf)'라는 단어의 수동태 형태를 띠고 있다. 독일어의 직업을 직역하면 '부름을 입다'라는 뜻이며 그 어원이 다분히 신앙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름을 입어 하는 일이 직업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입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직업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많은 직업이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정된다. 미용사, 정육사, 배관수리공, 은행원 등 전통적인 직업군들은 직업고등학교와 사업장에서 실습을 위주로 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전수된다. 
한 사람이 일생에서 직업교육을 두 번 이상 받기는 쉽지 않은 만큼 독일인들은 어린 시절 한번 결정한 직업을 웬만해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급변하는 지식사회의 필요에 대해 직업의 형태가 민첩하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인터넷 붐이 일어난 1990년대 말 독일의 기업들은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전했었다. 

반면 진중한 직업관은 숙련된 전문가를 양성함으로써 정교한 고품질의 상품생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자동차 업계는 세계 고급자동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정교한 부품 하나하나가 정확히 매치되는 고품질의 자동차를 설계하고 생산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직업을 얼마나 자주 바꿀지는 개인적인 선택일 뿐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직업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인 만큼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또 하나의 의미는 소중하다는 데 있다. 직업이 밥벌이 수단이 된 요즘 당연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는 대부분의 직업이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일은 농사지을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은 노예에게 시키고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에 대한 고대 사람들의 생각은 기독교가 전파된 중세에 이르러서야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는 왕과 귀족들로부터 많은 땅을 넘겨받아 수도원을 세웠는데 수도사들은 시간을 지켜 예배를 보고 짬짬이 나는 시간에 밭에 나가 일을 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했다. 그들은 노동을 노예들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수도사들은 모두 자유시민이나 귀족 출신이었지만 과거 로마제국의 노예들이 하던 일을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신에 해로울 뿐더러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만약 일을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적 가치가 없었다면 아직도 공장이 세워지지도 않았고 산업화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근대의 복잡한 경제시스템은 어느 특정 계층의 단순노동으로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건 일을 한다. 소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는 우선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부름을 받은 일은 모두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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