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 복면가왕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5년 05월 06일(수) 15:41

2007년 1월, '워싱턴 포스트'가 워싱턴 D.C. 시민들을 대상으로 깜짝 실험을 했습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거리의 악사처럼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는 43분 동안 계속됐습니다.


연주한 지 3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듣다가 손목시계를 보고는 급히 자리를 뜨는 등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7명이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고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연주하는 동안 27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습니다.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전날 지하철 역에서 연주한 사람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훈남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5살 때부터 스코틀랜드계 독일인인 아버지와 유태계 러시아인의 어머니 사이서 태어나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14살 때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협연을 한 바이올린의 신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천 여 명의 시민들은 단 1초도 그의 연주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 실험을 한 '워싱턴 포스트'는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앞에서 연주하고 있어도 눈치 채지 못하는 현대인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라서 또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내 주변에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요?


포맷은 좀 다르지만 국내에서도 최근 한 공중파 방송의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복면가왕이란 8명의 출연자들이 가면을 쓰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채 노래로만 평가를 받아 토너먼트 형식으로 최종 승자를 가왕으로 선정하는 미스테리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계급장 떼고 덤벼라"라는 슬로건 아래 숨겨져있던 실력파 가수를 발굴해 낸다는 제작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수에게 계급장은 곧 인기입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는 더 좋게 들립니다. 똑같은 곡이라도 유명가수를 만나야 인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만약 인기라는 계급장을 떼고 진정한 노래 실력 만으로 최고의 가수를 뽑는다면 누가 승자가 될까?"란 궁금증에서 이 프로그램은 시작됐습니다. 결국 인기라는 편견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노래 실력으로 자신을 인정받는 무대라는 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해변가의 두사람 혹은 한사람의 발자국 등으로 알려진 이야기 속에서도 "주님, 항상 저와 동행하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하지만 제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왜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나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어째서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나요?"라고 주인공이 묻자 "네가 가장 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한 그 때, 나는 결코 떠나지 않았단다.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본 것은 내가 너를 안고 갔기 때문이란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을 소홀히 하여 너무나도 가까이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보시는 주님의 눈길과 손길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주님의 진심을 모른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제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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