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솔선수범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29일(수) 16:45

오바마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서 유일한 생존자인 프랭스 버클스(Frank Buckles)가 108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전 국민에게 조기 게양을 요청하고, 국방장관 주관으로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정중한 영결예배와 함께 1차 대전 당시 미군 총사령관인 퍼싱(Pershing) 장군 묘역 옆에 안장함으로써 온 국민과 함께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국민적 일체감을 형성한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훈련 중에 동료를 구하기 위해 수류탄을 덮쳐 한쪽 팔을 잃은 르로이 페트리(Leloy Petri) 상사를 백악관에 초청해서 당시의 상황을 대통령 자신이 재연하면서 최고 훈장을 수여해 온 국민의 애국심을 고양하고, 군의 충성심에 대해 최대의 경의를 표한 사실 역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 직전 월남을 방문해 월남전 당시 통킹만에서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 발굴작업에 참여해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에 대한 경의를 표한 사실 또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서해교전 당시 해군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절박한 순간에 동해상에 금강산 유람선이 유유히 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단장의 비애를 느꼈다. 국가 지도급 인사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쓸쓸한 영결식장에서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46명의 꽃다운 해군 장병들이 목숨을 잃은 천안함 폭침 시 6.15공동선언 남측위원장 명의로 동 사건의 조작설을 주장하는 서한을 미국 의회와 유엔에 보낸 사실에 대해 유가족은 물론 많은 시민들이 비통해 했다. 비상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원의 상당 수가 병역미필이었던 사실에 대해 국민은 냉소했다. 

6.25전쟁 당시 국토방위의 성스러운 사명을 수행하다가 적에 포로가 된 국군포로는 정부가 만난을 무릅쓰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국가로서의 당연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조창호 소위가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 육군본부에서 귀임신고 할 때까지 '북한에 강제 억류된 국군포로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도 수백 명의 국군포로와 그 가족이 조국의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북측에 대해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제기해 본 적도 없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비 전향 장기수 이인모의 북송을 관철한 북한당국의 집요한 노력과 대조적이다. 아무리 동-서독 관계가 우리와 다르다고 하지만 22억불 상당의 물자를 지원하면서 3만 4천 명의 정치범과 25만 명의 가족을 서독으로 데려 온 서독 정부의 끈질긴 송환노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수령독재체제하의 북한정권에게도 우리가 눈여겨 볼 구석이 있다. 해방 이후 북한과 연변 등 만주 일원에서 일제에 항거한 독립지사의 유자녀들이 구걸하며 거리를 유랑하고 있을 때 김일성은 이들 유자녀들을 모두 평양으로 데려와 이들을 위해 '만경대 혁명학원'을 세우고, 부인 김정숙을 원장으로 앉혀 최고 엘리트 교육을 시키며 친 자식처럼 양육했다고 한다. 이들은 '혁명 유자녀'로서 김 주석 부부를 '어버이' 수령님으로 알고 자라 후일 북한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심지도그룹이 되었고, 그 후손들이 대를 이어 김정일, 김정은 체제를 이끌어 가는 핵심세력이 됐다는 사실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북한당국은 6.25 참전 병사들과 가족을 모두 신분상승시켜 수령독재체제를 떠 받치는 중견관리층으로 육성했다. 수령독재체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명맥이 유지되는 이유라 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독립 지사들의 유자녀와 6.25참전 용사들과 그 가족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한 사실과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남북한 간 첨예한 대치상황에서 사회 지도계층의 솔선수범의 정신(Noblesse oblige)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정말 나라가, 지도층이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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