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와 금융시장의 향방

[ 경제이야기 ]

박병관 대표
2015년 04월 29일(수) 16:44

박병관 대표
독일국제경영원ㆍ가나안교회

그리스는 신화의 나라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화는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됐다. 신화란 구전되는 것으로 '믿고 싶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즘 그리스의 채무불이행과 유로존 탈퇴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을 통해 새로운 신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신화는 '그리스가 장기적으로 국가채무를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채무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부도는 시기의 문제일 뿐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자면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그리스의 국가채무 규모는 175%로 유럽 최고수준이다. 그만큼 경제활동을 통해 갚아야 하는 부채의 규모가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가부채비율이 높아진 배경은 그리스의 국내총생산이 지난 수년간 지속해서 축소됐던 데 주원인이 있다. 바꿔말하면 그리스 경제가 다시 견실하게 성장하기 시작하면 국가부채비율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IMF에 의하면 그리스의 국가부채비율은 2019년 EU 평균에 근접한 112%로 낮아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자비용에도 달려있다. 그리스의 가장 큰 채권자인 EU는 빌려준 자금에 대해 평균 2.4%의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의 국채평균이자율인 2.7%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일부 이자비용은 10년 이후로 상환을 유예했고, 원금은 2019년에서야 상환을 시작해 2057년까지 장기간 상환하면 된다. 독일 정부의 계산에 의하면 그리스는 2021년부터 약 50억 유로의 상환하면 되는데 갚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최근 그리스의 디폴트 논의는 불가피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배경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정부는 국제기구로부터 구조개혁안을 승인받고 이에 대한 대가로 자금을 지원받는 순환구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 7년간 그리스의 경제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 기간 그리스의 산업생산은 30%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27%로 치솟았다. 임금이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공무원들까지 해고대상이 됐으며 의료시스템은 붕괴 위기에 있다. 그리스의 딜레마는 유럽 공동통화인 유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대신 내부의 실물경제가 가혹하리만큼 평가절하됐다.

신앙적 관점에서 국가의 경제를 운영한다면 현재의 경기를 부양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위기라고 할지라도 머지않아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국민들은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 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자국에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상황이 너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이들을 더욱 좌절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없고 외부의 환경에 의해 상당 기간 경제위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현실이다. 경제적 조건이 체계적으로 개인의 미래를 억압하는 상황은 합당하지 못하다.

만약 그리스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아마도 그리스에 그리고 나머지 유로존 국가들에 모두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만약 이 선택이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스 내 자산가치는 폭락할 것이며 단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 기간 이후 그리스는 다시 자신의 경제적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스 정부로서는 벼랑 끝 협상전술로 국제 사회와 갈등을 빚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미래에 대한 선택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달려있다. 외부에서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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