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5월 4~9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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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9일(수) 15:25

월-자녀의 중심을 봅시다
본문 : 삼상 16:6~13
찬송 : 300장

하나님이 기쁨으로 택하신 왕이 과연 누구일지 사무엘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사울왕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여태껏 보아 온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만큼 잘 생기고 키도 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이제 기름 붓게 될 사람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내가 사울을 버렸으니 너도 사울을 바라보던 그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외형만을 보았다. 이런 그의 단점은 그가 자신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던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사무엘이 아들들의 악한 모습을 보고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못난 아들을 사사로 세워 나라에 해를 끼치게 된 점을 먼저 후회했을 것이다. 더 크게 후회한 것은 자녀를 그렇게 키운 자신의 부족함이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이 사사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줄로 믿었다. 아들들의 됨됨이와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 보았다.
 
사무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원래 외모만을 본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아들 여덟을 두었다. 하지만 오늘 사무엘 앞에는 일곱을 데리고 왔다. 다윗을 빼놓았다. 그의 나이가 어려서이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아시며,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자녀를 가르치고 양육하고 의지대로 키워보겠다고 하는 것은 맹인이 길을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성령님의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중심을 본다"고 하시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한 마음을 보신다는 뜻이다. 감정과 의지도 보시고, 도덕성과 인격도 보시고, 그리고 믿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과도 그리고 하나님과도 잘 맞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 가지 점에서 모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자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외모나 외형, 조건을 보는 삶에서 마음을 보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마음으로 살아야 자녀의 마음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나님과 합한 마음이 되도록 자녀를 인도할 수 있다. 험한 세상에서 자녀가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고 사는 것처럼 든든한 것은 없다. 자녀를 지켜주시는 분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 자녀들의 마음을 살펴 주시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합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주성 목사
광주서석교회

화-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본문 : 눅 17:27
찬송 : 259장

노아가 방주를 짓고 들어가던 날까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먹고, 마시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성경은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고 기록한다. 육의 눈으로만 본다면 그들의 인생은 최고였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육적인 즐거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육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
 
첫째, 예수님께서 모든 구원을 완성하는 그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거룩하게 구별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가정이다. 감격과 환희가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현 시점에 찾아오는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가정을 하나님은 원하신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의인으로 구별 받게 된 것을 날마다 가슴에 새겨야 한다. 본래 우리들은 죄인이며, 구원 받을 조건이 없는 나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값진 보화이다.
 
둘째,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가정이다. 지금까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신 분은 누구인지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를 죄 가운데서 건지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님보다 더 값진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은 한 여인을 소개한다. 그녀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이다. 이 이방 여인의 믿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이 여인의 믿음을 큰 믿음으로, 그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선언하신 것이다.
 
셋째, 예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을 소유한 가정이다. 이 여인이 소유하고 있던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믿는 믿음'이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자비를 구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는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와 엎드려 간구했다.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자요, 구원자임을 확신하면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주님이 내 가정의 문제, 내 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자요,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오늘의 기도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친히 인생의 여정을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네가 부활을 아느냐?
본문 : 요 11:23~26
찬송 : 550장

최근 모 건설 기업 회장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오늘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이 이렇게 부패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탓이다. 고인도 신앙을 가진 분인 듯 한데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야 오죽했으랴.
 
한 사람 개인으로서는 의롭게 살려는 마음도 먹고 노력을 하는데, 막상 회사나 사회에 발을 붙이면 양심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이다.
 
본문의 말씀은 마르다와 예수님 사이의 대화이다. 주님을 극진히 사랑한 마리아,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는데 주님은 나흘이나 지나 상가에 당도하셨다. 마르다는 주님이 계셨더라면 자신의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란 마음에 다소 서운함을 드러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의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압니다"라고 답한다. 마르다의 대답에 주님은 다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은 부활에 대한 이해가 본문의 마르다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 되셨으니 우리도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이란 생각. 이정도의 이해는 마르다의 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마르다의 말에 주님은 당신을 믿는 자는 영원토록 죽지 않는 생명을 살 것을 말씀하신다.
 
주 예수가 말씀하신 죽어도 사는 생명,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은 바로 부활 생명, 예수 생명이다. 오늘 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은 이 생명을 사는 존재이니 네가 이것을 아느냐? 라고 주님이 큰소리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 같다. 우리는 시급히 이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숨어 살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를 뵙고 그의 약속하신 부활생명 주시는 영의 충만함을 경험한 후 그들의 삶은 전혀 달라졌고 그들의 인격은 새로워졌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시작됐다. 이런 일은 역사 이래 이어지고 있다. 1863년 8월 23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I have a dream이란 유명한 연설을 한다. 생명의 위협을 넘어 킹 목사에게 꿈을 준 성경은 오늘 신음하는 우리에게도 꿈을 준다. 역사의 마지막 일곱째 나팔 불 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주님의 통치 아래 우리 자신을 먼저 두는 것이 그 나라를 고대하는 성도의 마땅한 길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의 뜻을 좇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을 살리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진숙 목사
거창영락교회

목-한나와 엘리의 자녀 교육
본문 : 삼상 2:18~26
찬송 : 199장

수목이 푸르러지고 아름다워지는 5월은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주는 대표적인 달이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는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어디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가정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는 삶의 터전이다. 5월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비결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엘리와 한나의 자녀 교육을 서로 견주어 보면서 상고해보자. 


본문에는 사무엘과 어머니 한나와 엘리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등장인물로 나오며, 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이 대조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에게 구하여 얻다라는 뜻을 가진 사무엘은 기원전 11세기의 제사장, 예언자, 판관이었고, 이스라엘의 왕제 도입시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던 인물이다. 엘리제사장은 사무엘을 맡아 길렀던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었지만 아들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하지 못함으로 가문이 몰락하는 비운의 제사장이다.
 
한나는 아들을 여호와를 섬기는 자로 드렸다. 엘리 역시 그의 아들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드렸다. 그런데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더욱 은총을 받는 사람으로 자랐지만, 엘리의 아들들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과연 한나와 엘리의 자녀교육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이제 갓 젖을 뗀 소중한 아들을 성막에 남겨둔 채 집으로 혼자 돌아와야 했던 어머니 한나는 자신의 심장보다 더 소중한 자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어린 사무엘을 위해 해마다 지었던 겉옷에는 자신이 직접 기를 수 없었던 아들에게 주고 싶은 사랑이 한 올 한 올 아로새겨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을 떼어놓고 냉정히 돌아서는 어머니에게서 사무엘은 신실한 신앙과 준엄한 삶의 자세를 배웠을 것이고 위대한 영적 유산이 전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는 행실이 나쁘고 심히 큰 죄를 짓는 아들들의 수많은 악행을 전해 들었지만, 그 아들들의 악행을 엄하게 징계하지 못한 채 방치하고 말았다. 따라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멸망의 길로 더 빨리 달려갔던 아들들 때문에 결국은 가문 전체가 몰락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어떤 영적인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스승은 부모이다. 엘리처럼 자녀를 그저 인간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나처럼 때로는 자녀를 엄격하고 단호하게 신앙적으로 교육함으로 유혹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절제 할 수 있는 아이로 양육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안에 한나가 품었던 믿음과 신앙의 진정한 자녀사랑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우리의 유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도원 목사
작은빛선교교회(대구소년원)

금-주께 합당하게 행하라
본문 : 골 1:9~12
찬송 : 288장

얼마전 기독교방송에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여 많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불량식품이 백해무익하듯이 이단은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교회를 파괴한다. 방송의 내용중 왜 신천지가 이단인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가정과 교회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골로새교회도 이단으로 인하여 큰 곤욕을 당하고 있었다.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자들 거짓 선생들이 자기들의 가르침이 진리인양 말하며 교인들을 호도하고 거짓된 교훈으로 교회를 어렵게 만들었다. 바울은 위기 가운데 있던 골로새교회를 향해 참된 기독교 진리로 거짓된 가르침을 반박한다. 가짜를 이길수 있는 것은 진짜 뿐이다. 우리는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진짜는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오직 예수이다. 골로새에 있던 이단들 오늘날의 이단들도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선 예수님 하나로 충분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속량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내신 유일하신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며 다시 오실 심판주이시다. 세속적 사상, 철학, 율법적 종교의식은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뿐이다.
 
둘째, 복음에 합당해야 한다. 이단 때문에 위기에 있는 골로새교회에 대해 바울은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주께 합당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라"고 부탁한다. 합당하다는 것은 가치에 걸맞게 라는 뜻이다. 즉 주님의 기대와 가치에 걸맞는 삶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선의 삶이다. 이것을 추구할 때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다.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추진해야 하며 주님이 아닌 돈, 명예, 권력 등의 세상기준으로 인생을 설계하면 안된다. 내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서도 안된다.
 
셋째, 감사해야 한다. 우리 신앙의 위기는 불평과 원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고난과 역경가운데서도 시련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 그 한가지만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항상 감사해야 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자.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오늘의 기도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우리의 삶이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광환 목사
동현교회

토-다음세대를 향한 믿음의 책임
본문 : 출 2:1~10
찬송 : 545장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자녀를 키우기가 참 어려운 시대라는 느낌이 든다. 가치관이 혼란하고 젊은이들에게 수많은 유혹이 다가오며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시대, 문화적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한 가치관이 부재한 시대에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에는 우리 못지않게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자녀를 비범한 자녀로 키웠던 모세 부모의 믿음이 소개된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당시 히브리 백성들은 아들만 태어나면 나일강가에 버려야하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세의 부모는 어떻게 용감한 일을 감행할 수 있었는가? 성경에서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잊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었던 것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이 말씀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그들로 하여금 바로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들의 다음세대,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다음세대를 키웠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독재자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모세 부모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보다 더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모세가 보호되고 길러질 수가 있었던 것처럼, 나중에 모세도 하나님 만 무서워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위대한 다음세대를 길러냈던 것이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전수할 수 있다면 다음세대는 희망을 열어갈 줄로 믿는다.
 
셋째,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이다. 아마도 모세를 숨겨서 기를 수 있었던 최대의 기간은 약 석 달이었을 것이다. 말씀을 보면 모세의 부모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린다. 그 순간부터 기적의 드라마는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혼란한 시대속에서 포기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다음세대를 길렀던 모세의 부모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동일한 믿음으로 우리가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노력을 시작한다면 기적은 일어날 것이고 역사의 새로운 여명은 밝아올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가운데 무엇보다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오늘의 기도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므로 최선을 다하겠사오니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연 목사
세계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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