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즉인(信卽忍)

[ 논단 ] 주간논단

박종판 장로
2015년 04월 16일(목) 14:20

자장이 글을 다 읽고 떠나고자 하직인사를 하면서 공자에게 여쭈었다. "몸을 닦는 미덕될 말씀을 한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백행지본(百行之本) 은 인지위상(忍之爲上)이라 즉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제일이다"고 했다. 자장이 묻기를 "어째서 참아야 합니까?"하니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을 것이요. 제후가 참으면 땅이 커질 것이요.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갈 것이요. 형제가 참으면 집이 부귀할 것이요.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같이 해로할 것이요. 벗 끼리 참으면 서로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요. 자신이 참으면 화와 해가 없을 것이니라"고 답했다.
 
자장이 다시 묻기를 "참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하니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빈터로 화할 것이요. 제후가 참지 않으면 몸조차 없어질 것이요. 벼슬아치가 참지 않으면 법에 걸려 죽게 될 것이요. 형제가 참지 않으면 각각 분거할 것이요.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을 외롭게 할 것이요. 벗끼리 참지 않으면 정의가 멀어질 것이요. 자신이 참지 않으면 근심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라."
 
자장이 무릎을 치고 찬탄하면서 "참으로 좋고도 좋은 말씀입니다. 참는 것은 어렵고 어렵소이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면 참지 못할 것이요,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로다"라며 세상에 나가 평생을 '忍'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행심사에 참지 않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공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어야 된다. 더더욱 신앙인에 있어서 인내 없는 신앙생활은 진보가 없고 성숙도 없다. 의식과 습관에만 익숙할 뿐이다. 그런데 신앙의 최고지도자들이 모인 우리 총회는 왜 이렇게 싸움이 잦은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는 이 말씀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목적일 것이다.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얻어지는 열매는 온유, 양선, 사랑, 자비, 오래참음, 화평, 충성, 절제, 희락 등 성령의 열매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 등 빛의 열매요, 징계의 연단으로 맺는 의와 평강의 열매, 그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런 열매들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야고보서 1장 4절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우리에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信)은 곧 인(忍)'이라 할 것이다.


공자가의를 보면 "가면 못 오는 것은 세월이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부모라" 했는데 우리총회가 왜 이럴까? 왜 죽기 살기로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는가? 천년 만년 이 땅에 살 것도 아니요, 불현듯 이 땅을 떠날 터인데 석양의 인생길을 함께 가면서 세상의 것에 목숨 걸고 죽도록 싸워야만 하는 것일까? 이러고도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서시겠는가?
 
필자는 총회 세정대책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재정회의 중에 재판건수와 비용에 대한 추경을 결정하면서 가슴이 아팠다. 확대되는 관련부서의 경비와 해마다 늘어나는 재판비용은 모두가 우리 성도들의 헌금이기 때문이다. 귀한 헌금이 낭비성 경비로 출혈되고 있는 우리총회는 왜 이렇게 고(苦)가 많이 맺혀 있는가? 총회는 비생산적이고 구조악적인 제도를 심도있게 연구 모색하고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스려지는 100년을 맞는 성총회로 일어서야 할 것이다.
 
우리 기독교의 덕과 예는 말씀 안에서 경건과 절제의 삶을 생활화하는 것이리라. 신앙의 지도자들로서 품위를 잃지 말고 떨어진 교단의 위상과 하나님의 공의를 바로 세우는 데 이제야말로 우리 모두가 진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내가 주 예수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 받으라"고 바울처럼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들일 것이다. 
 
박종판 장로/전 총회감사위원장ㆍ대구애락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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