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가는 길, 멀고 험하다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14일(화) 14:10

'통일대박론'이 우리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통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통일은 분명 대박이다. 문제는 통일에 이르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사실이다. 통일은 궁극적으로 '이념'과 '체제'의 문제이므로 남에 의한 흡수통일이냐, 북에 의한 적화통일이냐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될 뿐, 소위 '느슨한' 통일과 '낮은 단계'의 통일 운운은 내심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의 기만적 정치선전에 불과하다. 상당 수 국민들이 북한 3대 체제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 정치적 불안, 사회적 혼란 등에 비추어 김정은 체제가 조기에 무너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장 기간 유지돼 온 수령독재체제가 무너지는 데에는 체제 자체가 갖고 있는 내구력 때문에 상당한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고, 자스민 민주화 혁명이 쇄도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북한도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예상하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소련은 1953년 스탈린 사후 흐로시쵸프 등장 이래, 항가리는 1957년 민주화 의거 이래, 폴란드는 1978년 바웬사의 자유노조 결성 이래 민주화 운동이 꾸준히 전개됐다. 2010년 튀니지를 비롯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으로 확산된 자스민 민주화 혁명은 이들 국가들이 이룩한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치 못한 정치적 정체와의 불균형이 주 원인이었다. 이에 비해 북한은 민주화 운동도, 경제적 성장도 철저히 차단되고 봉쇄된 '절해고도'인 점에서 이들 국가와 사정이 판이하다.

북한당국은 소위 '3대 혁명역량 강화사업'에 의해 분단 이래 북한 인민들에게 대남적개심을 고조시키는 이념사상 교양사업을 집요하게 전개해 왔다. 우리의 대북지원 사실조차 철저히 은폐한 채 동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 집단으로 인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위장 탈북자를 통해 남한 국민들이 탈북 동포를 무시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조성하는 정치공작에 주력해 온 결과 북한 인민들에게는 남한 동포에 대한 적개심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반면, 동맹인 중국의 대북 지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 KBS가 중국 내 탈북자 1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북한 주민 의식구조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중국이 63%임에 반해 한국이 31%였고, 2013년 10월 아산정책연구소가 실시한 '북한 붕괴 시 북한주민이 누구와 손 잡을까'라는 여론조사에서 중국과 통합이 40%, 한국과 통합이 27%로 나온 여론조사 결과 역시 북한 주민이 동족인 한국보다 중국을 선호하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2013년 12월 28~29일 조선일보의 국민통일 의식 여론조사에서 지난 20년 간 조기통일을 원하는 국민이 50% 감소한 반면, 분단유지를 원하는 국민이 50%증가한 사실은 여론의 큰 흐름이 조기통일 보다는 상당 기간 '한반도 평화공존'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북한에 긴급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북한 지도부는 유일 동맹국이자 당대당, 군대군 지휘부 간 유대관계를 맺어 온 중국에 도움을 청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북한에 정변이나 민란이 발생해 핵 무기가 유출되는 경우에도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나라 역시 한국보다는 핵무기를 보유한 중국일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과의 패권경쟁 차원에서 북한의 완충국으로서의 전략적 중요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기존 배타적 영향력을 고수하면서 경제적 유대를 가일층 강화해서 '동북공정'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북한경제를 동북경제구에 포함시키는 '동북4성화'를 염두에 두고 중국 특유의 '소실대탐' '만만디' 외교를 구사해 왔다.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서 미국이 제의한 미중공동의 비상대책(contingency plan) 추진을 '국내 문제 불간섭 원칙'과 '유엔 안보리 결의(중 거부권 보유)'를 이유로 완곡히 거부한 데서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에 속하므로 중국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할 것이다. 미중 양국이 상당 기간 한반도 현상유지(status quo)를 원하므로 한국 정부 역시 원하는 바가 결코 '흡수통일'이 아니고 상당 기간 민족이 공존공영하는 '한반도 평화공존'에 있음을 북한 위정자들에게 꾸준히 설득하면서 통일 대박론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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