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파 조직의 발족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5년 04월 14일(화) 13:57

1981년 구세군 시설에도 KNH 후원금이 지원되기 시작하면서 KNH 후원을 받는 교단은 3개 교단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초교파적인 조직이 필요해졌다. 

1981년 초교파 조직인 'KNH 한국협의회(KNH-Korea Council)'가 구성됐다. 이 협의회는 1981년 7월 9일 총회를 가짐으로 공식적으로 발족되었다. 초대 운영위원은 이의호 예장 통합 총무, 동인천도시산업선교센터 대표 이국선 목사, 구세군 김순배 사령관이었다.(작은자 20년사, 81) 

이의호 총무는 그 당시 남양만 지역 KNH 지원금 창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김종규 장로 면담 2014. 5. 12) 이국선 목사는 이미 1977년부터 KNH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어린이집 운영 측면에서 KNH 루어스 총무의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구세군의 참석 경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81년 5월 6일 KNH 루어스 총무와 바우만 박사가 구세군 본영을 방문하고 김순배 사령관을 만났으며, 이 때 이미 서울 혜천원과 군산후생학원을 후원하고 있다고 구세공보는 전했다.(구세공보 1981. 6월 8면)

협의회 발족과 함께 동인천산업선교센타 산하 은석어린이집이나 도화은석어린이집은 이국선 목사의 지도를 받고 성남제일성경구락부는 최규성 교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제주도 동쪽에 있는 어린이집은 지역 주민들의 열정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에 따라 교회도 부흥하고 있었다. 남양만지역은 KNH 조정관 황화자 전도사를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갔다. 이 당시 각 시설들에는 KNH 후원 이외에 일본 밀알회 회원들의 후원도 있어서 1981년 경까지 그 후원금이 거의 10만 달러 정도 됐다.(밀알회보 13호, 4) 

1982년 한국 KNH 협의회의 명칭이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The Han-Dok Church Council Care in Korea; 약칭 한아협)로 변경됐다. 운영위원도 재조정되었다. 이국선 목사, 예장 통합 총회 사회부 총무 정봉덕 장로, 예장 통합 총회 사회부 간사 박창빈 목사, 구세군 사회부 서기관 권태훈 참령이 운영위원이 되었고, 동인천산업선교센터의 이국선 목사에게 운영위원회 위원장이 맡겨졌다.(작은자복지선교회 20년사, 81) 새롭게 조정된 운영위원들은 각 교단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관련된 업무를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부서 책임자들이었다. 그러므로 1981년에 조직된 운영위원회는 상징적인 의미의 운영위원회였고, 새롭게 조정된 운영위원회는 처음 보다는 더 실제 업무 중심적인 운영위원회였다. 

이 협의회의 행정적인 실무는 남양만 지역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와 KNH 교량역할을 하던 황화자 전도사가 맡았다. 나영희 간사가 이를 도왔다. 한아협 사무실은 황 전도사가 남양만에 있을 때는 독정리어린이집에 있었으며, 1년 후 노원유아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노원유아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1983년 7월 황화자 전도사는 맥코믹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한아협 사무실은 종로5가 기독교회관 605호로 이전되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