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밭엔 왕대'

[ 논단 ]

홍지연 박사
2015년 04월 14일(화) 13:52

홍지연 박사
경민대학교 부총장


새 학년과 새 학기를 맞은 캠퍼스는 활기가 넘친다. 입학식에서 만나는 신입생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희망으로 빛이 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제 수업과 강의를 통해 만나는 학생들의 가슴은 불안과 두려움에 찌들어 있다. 과연 과 선택은 제대로 한 건지? 정말 내 적성에 맞는 과정인지? 만나는 친구들은 괜찮은 아이들인지? 교수들이 인생의 멘토 역할을 전심으로 해줄는지?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맞이하는 대학 생활은 낭만적일 수만도 없고 무지갯빛 미래를 확약해주지 못함을 쉽게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에서 무상급식의 예를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무상급식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휘말려 원래 목적과 취지와는 상관없이 우리 교육 현장에 이식됐다. 서울시의 수장 자리까지 내놓고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더니 결국 실시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무상급식을 포기하겠다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무상급식은 부모의 할 일을 줄여주거나, 시간 절약의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알레르기가 있는 자녀도 있고, 특정 음식을 못먹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같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은 공평을 가장한 테러일 수 있다. 심지어 항공 기내식에도 기호에 따라 주문할 수 있고 특정 식품이나 재료를 거부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먹는 것처럼 인권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척도도 없다. 이 기본적인 권리를 갖지 못하는 학생들을 정부가, 지자체가 자연스럽게 돕는 프로그램이 무상급식이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음식을 먹는다고 교육의 결과마저 동일하게 나타나진 않는다. 결과까지 동일하다면 창의적 교육, 미래 지향적 인재 양성은 포기해야 한다. 명문대학 입학을 목표로 전부 공부에 몰입한다고 모두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않는다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진리이다. '공평한 사회에서 공정한 기회를 갖게 하는 교육'이란 키 작은 아이가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키 큰 아이의 관절을 부러뜨리는 것이 아니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이 태어난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갖게 되는 자격지심이 불공평하다고 특정 계층의 자녀 출산의 기회를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교육 과정과 결과를 모두 똑같이 기대하는 것도 공평이나 공정과는 다른 영역이다.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각 자녀에게 맞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고 다양한 과정에 의해 서로 다른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 교육이다. 왕대밭엔 왕대가 난다. 왕대밭에서는 고품질 왕대도, 부실한 왕대도 날 수 있다. 하지만 부추나 양파가 나지 않는다. 왕대밭의 토양을 좋게 하고, 적절한 햇빛과 적당한 물, 양질의 거름을 공급하고 때에 따라 잡초를 제게 해주어야 왕대다운 왕대로 자라고 풍성한 수확도 가능하다. 이래야 공평하다. 이것은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좋은 선생님들,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한편으로 왕대만 좋은가? 다양한 야채, 채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식탁이 풍성해지고 우리의 건강이 균형을 이루듯이 자로 잰 듯한 교육 과정과 결과로는 절대 희망찬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내 자녀가 왕대인지, 쑥대인지 아니면 다른 달란트가 있는지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의미 없는 일에 목청을 돋우기 보다는 내 자녀의 품종에 맞도록 토양을 잘 가꾸는 부모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부모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래서 캠퍼스에서 만나는 청년들이 힘들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슴에 담고 각자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열심을 다해 정진할 수 있는 신학기가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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