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미친 열정 '위플래쉬'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5년 04월 14일(화) 13:48
   
▲ 강압적인 교수 방법으로 악명 높은 플랫처 교수에게 배우고 있는 주인공 앤드류.

감독: 다미엔 차젤레, 드라마, 15세, 2014

천재와 관련해서 회자하는 해묵은 질문이 하나 있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대할 때마다 또한 흔히 듣는 대답이 있다. 천재는 99프로의 땀과 1프로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1프로의 영감을 아쉬워하지만, 천재들에게는 99프로의 땀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사실 관건은 영감과 땀의 양이 아니라 99프로의 노력과 1프로의 기회가 적시에 어우러지는 일이다.

천재들을 대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있다. 천재들의 1프로 영감에 집중하다보니 그들에게 99프로의 현실이 어떨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각 분야의 천재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천재성을 부각시키고, 다른 하나는 천재성과 함께 나타나는 혹은 천재성을 발휘하기까지의 광기를 표현한다.

그런데 영화적으로 재현된 것을 바탕으로 99프로 노력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미친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재들이 보통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도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에 대한 미친 열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결코 천재를 이해할 수 없다. 천재성을 아쉬워하는 보통사람들의 경우 99프로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미친 열정을 보통 상식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여러 이유로 미친 열정에까지 이르기도 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천재들을 구성하는 99프로의 노력, 곧 미친 열정을 영화로 표현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위플래쉬'는 아마도 천재들의 미친 열정을 말함에 있어서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재의 99프로의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또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자신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미친 열정의 희생자가 되어야 하는 비극적인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대중음악, 특히 드럼을 전공하는 앤드류는 가족 모임에서 늘 외톨이다. 형제들은 모두 이름 있는 대학에 부모의 바람에 부합하는 전공을 공부하고 있지만, 유독 앤드류만은 가족들에 의해 다소 경시되는 대중음악을 전공하기 때문이다. 나름 재즈음악으로 유명한 대학에 다닌다 해도 가족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존심이 강한 앤드류가 드럼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단순한 바람을 넘어 강압적인 분위기였다.

게다가 앤드류로 하여금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을 더욱 강하게 갖게 만든 일이 발생하는데, 학교 내에서 최고 뮤지션으로 알려진, 그러나 교수 방법에서 악명 높은 플랫처 교수의 밴드에 드럼 메인 연주자로 발탁된 것이다. 성공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최고로 이끌어줄 지도자를 만난 앤드류는 이 분야에서 위대한 성공을 이룰 욕심으로 여자 친구와도 과감하게 결별한다. 그 후 말 그대로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고 또한 그런 노력에 스스로 어떻게 희생되는지도 엿볼 수 있다. 성공하기 위해선 플랫처 교수의 언어 폭력적이며 강압적인 교수 분위기를 꿋꿋하게 참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플랫처의 채찍질은 마침내 앤드류의 잠자고 있던 미친 열정을 깨웠고 또한 앤드류 스스로 미친 열정의 희생자가 되도록 했다. 다시 말해 도가 넘은 강박감에 사로잡힌 앤드류는 연주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감정적으로 폭발하여 통제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 때문에 앤드류는 드럼에 대한 꿈을 내려놓는다. 물론 플랫처의 교수방법에도 문제가 있음이 밝혀져 플랫처는 음악원을 떠나게 된다. 그 후 앤드류는 우연히 플랫처가 일반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이를 계기로 앤드류와 플랫처는 재회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플랫처의 친절한 제안으로 앤드류는 카네기 홀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지만, 연주할 곡이 사전에 들은 것과 달랐고 또 악보를 받지도 못한 채 연주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을 음악원에서 쫓겨나게 빌미를 제공한 사람이 앤드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플랫처가 복수할 요량으로 꾸민 일이었다. 연주는 앤드류 때문에 크게 실패하였고, 이 때문에 받은 큰 충격은 앤드류에게 1프로의 영감으로 작용하여,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천재성을 맘껏 펼친다.

'위플래쉬'는 천재들의 미친 열정이 어떻게 깨어나는지 또 어떻게 스스로 그 미친 열정의 희생자가 되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연출에서 뛰어나고 또한 앤드류와 플랫처로 분한 두 배우의 연기도 압도적이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참 불편한 영화다. 특히 비인격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인 교육 방법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천재들의 99프로의 노력을 깨우는 일이라 해도 그렇다. 그러나 천재의 현상을 기존 인식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위험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천재들의 미친 열정 혹은 99프로의 노력의 실상이 어떤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만족해야 한다.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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