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을 변화시킨 어린이집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5년 04월 14일(화) 13:37

우도는 제주도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약 3.9km 남짓 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소가 누운 것 같다고 하여 우도라고 불린다. 섬 전체는 완만한 평지이며, 총 6.6㎢ 정도 된다. 1970년대 우도에는 35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12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초등학교도 있었고, 중학교도 있었다. 그러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없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가 개척한 우도교회의 여전도사는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교인 10여 명에 불과한 우도교회에서는 어린이집을 세울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전도사는 개인 사정상 우도교회를 떠나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로회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과 주선애 교수는 그 학교 졸업생이었던 홍성진 사모에게 이 일을 권했다. 홍 사모는 어려서부터 유치원을 운영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로 알고 우도교회에 남편 이정구 전도사와 함께 1978년에 부임하였다. 제주도 동쪽에 있는 작은 섬, 우도로 간 홍성진 사모는 교회 건물에서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서연합회 총무를 사임한 후 남양만지역 농촌선교에 힘을 보태고 있던 황화자 전도사가 외딴 섬, 우도어린이집 소식을 김진홍 목사에게 전했다. 김 목사는 이 소식을 독일 KNH에 알렸다. 이렇게 해서 우도어린이집은 설립과 함께 KNH 지원을 받았다. 우도교회와 어린이집은 우도 중앙동에 있었다. 어린이집이 열리자마자 우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12개 마을 아이들이 모였다.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대단해서 어린이집에 모인 아이들은 보통 70명 정도 되었다. 교사가 필요했다. 교인 가운데 간호조무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어린이집 일을 도왔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다. 홍성진 어린이집 원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교인 한 사람을 육지로 보내 유아교육을 공부하게 했다. 그는 교육받은 후 돌아와 함께 우도어린이집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식사와 간식을 준비해주는 교사도 있었다. 

하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네 명의 교사들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어머니들은 그들이 바다에서 캐낸 전복 등을 어린이집에 가져다주었다. 정말 싱싱한 해산물들을 보면서 어머니들의 열정과 사랑을 느끼며 교사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주민들과 교회, 그리고 탁아소와 어린이집이 이처럼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다 보니 교회도 점차 부흥했다. 처음 10여 명 정도였던 교인 수가 5년쯤 지나자 50명 정도 됐다. 이 교회에는 동네 주민들과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물론이려니와 우도에 있는 군부대 군인들도 출석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생님들도 출석했다.(이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3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홍성진 사모와 교제를 나누고 있다.) 

KNH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린이집과 탁아소 운영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KNH 후원받는 다른 시설들과는 지리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 오가며 교제를 나누었다. 1980년 KNH 총무 루어스 씨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는 화성군 남양만과 인천에 와서 만나기도 하고 인천 은석어린이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KNH의 후원 받는 시설장들과 돈독한 교제를 나눴기에 홍성진 원장은 거의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시설장들을 만나면 즐겁다고 말한다.
 /여전도회 작은자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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