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세례 직후의 첫 성찬은 유보될 수 없는 특권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4월 14일(화) 13:37
   
▲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성공회교회에서 부활주일, 흰 옷을 입은 유아세례자들이 첫 성찬에 참여하는 모습.

세례는 받았지만 여전히 성찬에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유감을 표하는 성도들을 간혹 만난다. 이러한 유감표명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그들 대부분이 그동안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고 세례 때까지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성찬이 세례의 조건이었다면, 세례와 함께 성찬에 참여할 기회가 가시적으로 즉각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세례가 성찬을 받기 위한 요건이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사도행전 2장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하였다고는 전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세례가 성찬의 필수요건이라는 직접적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초기의 문헌들이 세례가 성찬의 필수요건이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데, 1세기 말의 디다케나 2세기의 순교자 저스틴의 변증론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세례를 받을 때까지 성찬을 유보했던 것은 초기 기독교가 성찬에 대한 오해로 많은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충분한 학습을 통해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이 성찬이 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던 것이다. 박해가 끝난 후에도 이런 제도는 여전히 교회를 지키고 성장시키는데 효과적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전통이다.

개혁전통에서도 세례와 성찬의 상호성이 강조되어 왔는데, 이 역시 성찬을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찬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하도록 세례 때까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기쁨과 감사를 유보시켰던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PCK) 헌법은 세례성례전을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된 성도들이 성찬을 통해 성장해나가고, 세례를 받은 모든 성도들과 교제하며 함께 천국의 혼인잔치의 기쁨을 미리 맛본다고 밝히고 있다. 즉 세례를 받은 자들은 즉각적으로 성찬을 통한 성도의 교제와 천국잔치의 맛봄을 경험할 수 있는 은혜의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례 때까지 유보된 이 성찬의 감격은, 세례와 함께 즉시 제공되어야 한다. 정작 세례 후에도 그 기쁨을 즉시 경험할 수 없다면 이것은 세례를 받은 당사자들에게 유감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례 때까지"라는 성찬의 제한은 세례와 함께 즉시 풀려야 한다.

세계교회는 세례 직후의 첫 성찬에 대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지난 1세기 동안 많은 신학적, 그리고 예전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지어 이러한 원리는 유아세례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한다는 주장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유아들의 세례 직후 첫 성찬을 허락하였고, 현재 개신교 주류교단들 대부분이 시행하고 있다. 물론 정교회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세례 직후의 유아성찬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이와 같이 세례성례전이 주님과 연합하고 신앙공동체와 함께 성찬성례전에 참여하기 위한 관문이라면, 문을 열고 들어온 자들을 위해 성찬의 식탁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는 주님의 식탁에 함께 참여하는 성찬성례전의 행위야 말로 신앙공동체를 가장 가시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상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켜질 때에야 교회의 역사가 만든 이 전통이 성서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당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례성례전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성찬성례전을 준비하여 세례자가 경험할 수 있는 첫 성찬의 감사와 기쁨의 고백이 즉각 일어날 수 있도록 하자.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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