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안보 위기, 北-경제 위기

[ 김 대사의 북한 엿보기 ]

김명배 대사
2015년 04월 14일(화) 13:26

김명배
前 주 브라질 대사ㆍ예수소망교회


오늘날 남북한이 처해 있는 상황은 '남 안보 위기, 북 경제 위기'로 요약할 수 있다. 안보 위기도, 경제 위기도 원인은 북한의 수령독재체제에 있다. 북한당국이 체제의 존재 사유이자 불변의 혁명 목표인 '남조선 적화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한 관계는 '이기느냐, 지느냐'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남한은 오로지 적화와 원조 탈취의 대상일 뿐 결코 대화, 협상과 화해, 협력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북한당국은 '3대 혁명역량 강화 사업'에 의해 북한 인민에게는 대남 적개심과 전의를 고취하는 반면, 남한 국민에게는 대북 동포애와 평화 무드를 조성하고, 안보 의식을 무너뜨리는 정치 공작을 집요하게 추구해 온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의 사활이 달린 안보 문제가 경제 문제와 사회 문제에 밀려 안보를 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방심을 노리는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의 결과이며 우리 사회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한편 북의 경제 위기는 수령독재체제의 본질적 요소들로부터 야기되는 불가피한 현상인 점에서 체제 유지를 최우선시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해소할 방법이 없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폐쇄, 고립, 군사적 긴장, 인민 우매화, 수령 신격화 등 수령독재체제의 본질적 특성들이 하나처럼 경제 발전의 필수적 요소인 개방, 친선우호, 평화, 창의력 등과 정면 배치되는 개념들이므로 경제 침체는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북한 정권이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불가피한 질곡이다. 

문제는 스스로 경제위기를 해소할 수 없는 북한 당국이 '남조선 적화 통일'에서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기 때문에 남한 사회는 북한의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까지 안보 위기의 부담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휴전 이후 남북한은 체제 경쟁에 돌입하면서 남은 경제 건설에 주력해서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반면, 북은 군사제일주의 노선에 집착하면서 경제가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남한 국민은 북으로부터 끊임없는 남침 위협에 직면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안일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s)에 빠지지 않고, 한미 동맹에 의한 미국의 전 방위적 지원에 힘입어 경제건설에 매진한 결과 위기를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면서 세계인이 선망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반면, 군비증강, 핵 무기, 미사일 등 군사력에 매달려 온 북한은 '아시아의 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이 여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북한 당국은 주한 미군의 전쟁 억지력으로 인해 무력에 의한 적화 통일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탈 냉전 이후 동북아와 그 중심에 위치한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주한 미군의 철수 가능성이 더욱 줄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김일성은 4.19 학생의거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권이 교체되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남한 사회에 친북좌경세력만 상당 수준 확보할 수 있으면, 굳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민주사회의 합법 절차인 선거를 통해서도 적화통일이 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1961년 9월 당 대회에서 대남 정치공작에 주력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특히 남한 사회의 전쟁 기피, 평화 무드 조성과 안보 의식 해이, 반 독재 학생운동의 주사파화를 통한 정계 장악,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좌편향 이념 교육을 통한 친북세력 양산 등 중장기 정치 공작에 지난 반 세기에 걸쳐 집요하게 매달려 온 결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안보를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될 정도로 안보 사각지대화 된 지 오래다. 남조선 적화에 혈안이 된 북한 정권을 놓고 한때나마 주적 개념을 삭제했던 사실이 안보상황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북한 위정자들은 2017년 대선에 친북 성향의 정권이 집권하도록 대남 공작 역량을 총 동원해서 '올 인'할 것이다. 붕괴 위기에 처한 북한 위정자들의 단말마의 발악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안보는 '유비무환'이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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