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염소의 심판 비유

[ 성서마당 ]

차정식 교수
2015년 04월 14일(화) 13:14

차정식 교수
한일장신대학교


인자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비유는 모든 족속들이 좌우편으로 나뉘어 옥석이 가려지는 사건을 들려준다.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나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주인공들은 예수께서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이고 마시게 한 자들, 또 그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힌 자들, 병들었을 때 돌보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본 자들이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저주를 받아 마귀와 그 졸개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구덩이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여기서 극적인 반전의 순간은 심판자인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등치시키는 대목이다. 이 문구로 그는 그저 자신의 동족이나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동생들을 염두에 둔 게 아닐 것이다. 그는 좁게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내 형제'로 간주한 것이고, 넓게는 자신이 돌봐온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이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특정한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들은 구약성서에서 야훼 하나님을 보호자로 삼고 '고아와 과부'로 분류되었던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지칭한다.

|놀랍지 않은가.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 영생과 영벌 사이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심판관인 당사자가 이 땅의 불우한 이웃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돕고 섬겼는가에 두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교리 전통에 익숙한 신앙생활의 관행에 비추어보면 매우 당혹스런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교리적 얼개를 강조한 사도 바울조차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언급하였고, 야고보서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 했으니 양쪽의 가르침이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주변의 절박한 생명을 구체적으로 돕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을 알고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필수불가결하게 얽혀 있는 셈이다.

오늘날 점점 더 심화되는 양극화 시대에 우리의 시간과 지식, 재물과 재능, 신체 에너지를 통해 돕고 섬겨야 할 변두리의 생명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전 지구적 자본제의 굴레와 거기에 물든 다수의 이기적 탐욕이 그 부조리한 체제를 태동시켰고 여전히 지탱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변두리 마을들과 멀리 외지의 낯선 곳을 순회하면서 음지에 버려진 병자들을 치유하고 가난한 생명을 돌보는 사역에 매진하셨다. 동시에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급진적 희망의 메시지로 선포하셨다. 오늘날 희망이 고갈되는 세태 속에 우리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 종말 심판의 메시지에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때가 악하고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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