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갑'이 아닌 '을'

[ 논단 ]

홍지연 박사
2015년 04월 14일(화) 11:56

홍지연 박사
경민대학교 부총장


일명 '땅콩 회항'으로 갑-을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더 나아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부당한 행위를 남발하는 '갑질'의 추악한 행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하물며 대부분의 고용계약서에 갑과 을대신 사업주-계약상대자 혹은 근로자로 대치된 용어가 등장했다. 공정거래의 틀을 계약으로 맺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공정한 계약이 될 만한 사항들을 개선하느라 분주한 요즘이다. 

그렇다면 계약서 하나 없이, 선택권마저 없이 태어나는 자녀들과 부모관계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방학 때마다 지적되는 어린 자녀들의 학원순례행렬. 대학입시만을 위해 유치원 때부터 조련당하는 아이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를 담보로 자녀에게 강요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옳은지 막막하기만 하다. 나이가 어리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마저 빼앗긴 자녀들이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까 따져보면 요즘 아이들 말대로 '노답'이다. 

하지만 방송미디어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의 연령은 한없이 어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린 나이가 이제는 수치나 비밀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요인이 되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자퇴율도 만만치 않다. 어리다는 사실만으로 누려야할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자녀들의 실정은 누구 때문인가?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업시간이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담임선생님이 부모님들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모님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살짝 체벌했다고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부모님한테 한 대 정도 안 맞고 크는 아이들이 어디 있겠냐며 "너희들도 그렇지?"하고 질문했단다. 딸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 지금까지 한 대도 맞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같은 반 아이들이 동시에 "우~와, 진짜?" "대박!"이라고 반응했다며, 전교에서 부모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13세를 맞은 아이는 자기뿐이라고 엄청 자랑스러워했었다. 

학교에서 체벌하면 선생님을 고발하고, "우리가 선생님 평가하는 거 아시죠?"라며 대드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교직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이 늘어만 간다. 하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들은 부모의 부당한 행위에 반항도 못하고 고스란히 참아내야만 한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워 휘두르는 갑질을 '사랑'이라고 세뇌당하며 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부모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만약, 정말 만에 하나 자녀 출생신고서와 함께 부모-자녀 간 계약서를 써야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써질지 궁금하다. 우선 갑-을 관계는 친권자-양육대상자로 될 것이고, 양육에 필요한 기초적인 모든 것은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고 신체적, 심리적 학대는 절대 불가하며 등등 말하지 못하는 갓난아이부터 성년을 맞을 때까지 약자인 양육대상자의 권리를 조목조목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분을 불러일으킨 '땅콩 회항'의 갑질보다 더 지탄받아야 할 대상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갑질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영원한 '수퍼울트라캡짱을'이다. 부모를 선택할 자유도 없이 태어난 자녀들에게 부모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과연 현재 자기 부모를 선택할 자녀들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새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떤 학교로 진급할지,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날지 걱정이 많은 부모들이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이 고심해야할 사항들은 내 자녀가 양육대상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며 살고 있는지, 부모로써 말도 되지 않는 불공정하고 부당한 갑질을 약자인 자녀에게 마구 휘두르고 있지 않은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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