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과 이자금지

[ 경제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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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9일(목) 11:54

박병관 박사
독일국제경영원 대표ㆍ경제학 박사


베니스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아름답고도 화려한 자태에 감탄하였을 것이다. 바다 위에 낸 수로를 따라 배를 타고 형형색색 빼곡히 들어선 중세와 고대양식의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다 보면 마치 동화 속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자체로서 예술작품인 수려한 다리들을 지나 도시 중심부에 있는 웅장한 마르코 광장에 다다르면 과연 이곳이 중세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음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베니스가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 배경이 중세시대 이자금지제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가톨릭 교회는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신 23,:19)'라는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기독교인들 간에 이자를 받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였다. 이교도인 유대인들에게만 이자수취가 허용되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에서 보듯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사회적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자금지법으로 자금의 융통이 어려워지자 베니스의 상인들은 편법을 만들어 냈다.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서에 기재된 금액보다 일정액이 적은 금액을 빌려주고 계약만기가 되면 차용증서에 기재된 금액 전액을 돌려받는 것이었다. 일종의 '꺾기'를 통해 교황청의 눈을 피해 선이자를 받는 편법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베니스에서는 대출금융뿐만 아니라 보험업도 시작되었다. 상인들이 해상으로 물건을 운송할 때 선주들에게 화물의 가치보다 더 많은 액수를 계약서에 기재했는데 이 웃돈은 해상운송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였다.


상인들에게 있어서 금융과 보험이라는 제도는 수많은 해상사고의 위험 아래에서도 미래의 이윤을 정확히 계산하고 투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른 지역의 상인들이 손실의 가능성이 두려워 교역을 주저하고 있는 사이 베니스의 상인들은 먼 인도까지 진출하는 등 세계를 누비며 부를 축적하였다. 이자와 보험으로 표현되는 금융제도 존재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베니스를 가능케 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이자는 교황에 반발한 지주들에 의해서 점차 허용되었으며 가톨릭 교회도 1830년 이자 금지를 공식적으로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자본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이자를 금지하는 데 대한 개념적인 모순과 현실적 필요를 인정한 것이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이자 자체에 대한 금지보다는 이웃을 배려하려는 자세와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즉, 탐욕에 따른 과도한 이자로 이웃을 착취하지 말라는 성경의 정신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잘 발달한 금융은 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도 있을뿐더러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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