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30일~4월 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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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5일(수) 10:36

월-온유
본문 : 마 5:5
찬송 : 375장

'온유'라는 말의 헬라어(프라우스)는 원래 야생동물이 온순하게 잘 길들여진 상태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온유한 사람은 '분노에 있어서 중용을 취할 줄 아는 사람'이다. 대인관계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 특히 화를 내는 것에 있어서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는 이와 다르다. 예수님의 온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요소이다. 혈기가 많은 사람이 성령님의 역사로 변화해서 온유해진 경우를 말한다.
 
선천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지만 자기 생각과 고집이 강하다. 평소에는 온유하지만 결정적일 때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변화된 온유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행복을 잃지 않는다. 온유한 사람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쉽게 화를 내지 않고 항상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인물 가운데 가장 온유한 사람은 모세였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본래 모세는 혈기가 충만하여 애굽 청년을 한방에 때려죽인 사람이다. 이런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자 생활과 처가 생활을 통해 깨지고 부서져서 온유한 사람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온유이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다. 사람들은 피로에 지친 자, 인생의 상처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을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온유하신 예수님은 이들을 환영하셨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자들에게도 온유하셨다. 예수님은 매 맞고 무고하게 재판을 받으시면서도 온유하셨다. 예수님은 온유의 품속에 죄 많은 인생들을 담으시고 보혈의 피로 씻으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분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직결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을 받을 때 강팍함으로 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한다. 말씀뿐만이 아니다. 교회 생활, 형제를 징계할 때, 전도할 때도 온유함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온유한 사람들에게 복을 약속하셨다.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된다고 하셨다. 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풍성한 삶을 의미한다.
 
온유한 사람은 관계에서 승리한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서 조화와 풍요로움을 맛보며 살아간다. 온유한 사람은 지경이 넓어져 영향력이 땅 끝까지 이르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께 온유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다. 타인과의 관계도 나 자신과도 불화하게 된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하시고 주님의 온유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아멘.

이전규 목사
신림교회


화-숙제가 잔치가 될 때
본문 : 요 2:1~11
찬송 : 434장

학교를 졸업해도 인생은 계속되는 숙제의 연속이며 그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예수님은 무거운 세상 숙제에 수고하고 치친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쉽고 가벼운 숙제를 맡겨주셨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2장은 삶이 잔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숙제를 감당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이 내주신 숙제를 잘 감당한 성도는 주님과 함께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주인의 숙제이다. 주님을 잔치자리에 초청하는 것이다. 혼인잔치는 외형상 즐거웠지만 포도주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곧 잔치의 흥겨움은 사라지고 부끄러움이 잔치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이 그 자리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잔치 같은 즐거운 인생을 꿈꾼다. '잔치 인생'이 되길 바라는가? 주님을 초대하라. 그리고 삶의 중심에 귀한 자리를 마련하고 주님을 모시라.
 
둘째, 마리아의 숙제이다. 주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잔치 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포도주를 구할 방법도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전능함을 알기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지금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주님을 삶의 자리에 초청했다면 기도로, 간절함으로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라.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셋째, 하인들의 숙제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한다. 포도주라고 믿고 물을 떠서 잔치자리에 가져다 주라는 것이다. 하인들이 말씀에 순종할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이 상식을 넘어설 때 보이는 것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나의 이성과 상식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만나 주셨다고 고백했다. 삶의 자리에 주님을 초청하고 기도로 도움을 요청했는가?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길 바란다.
 
주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숙제를 감당하심으로 죄 가운데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지금 나는 어떤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맡겨주신 숙제를 충실히 감당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잔치 인생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내 삶 가운데에 주님을 초청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잘 감당하는 힘과 능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성철 목사
새롬교회


수-영혼 구원을 받은 것이 믿음
본문 : 벧전 1:9
찬송 : 310장

하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때가 되어 가매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씀을 주시며 실현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인간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감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하고 꼭 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더욱 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셨을 것이다. 구속의 약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줘 먹게 함으로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나서 바로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 오셨고 기회를 주지만 죄가 들어온 인간은 죄를 시인하기 보다는 죄를 전가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첫 번째 구속의 약속을 주신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사탄의 심판에 대한 선언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것을 계시하신다.
 
둘째로 세월이 흘러 구속의 역사를 이루실 날이 다가옴을 하나님께서는 사람 중에 믿음의 종 이사야 선지자를 택하여 그에게 구속의 말씀을 더 확실하고 선명하게 주신다. 이사야 7장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다. 여자의 후손에서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으로 더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처녀를 통하여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더 확실해진 구속의 약속을 기다리게 된다.
 
셋째로 하나님의 구속의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마리아에게 보내시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대화를 통하여 모든 것을 안 마리아는 "믿음으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함으로 성령이 마리에게 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시게 되었다. 그리고 때가 되매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와 성도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시며 재림을 약속하고 계신다.
 
때가 가까워 올수록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실현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의지하여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굳게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이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영숙 목사
장암교회


목-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꿈을 바꾼다
본문 : 행 8:5
찬송 : 292장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의 방법은 어떠한 해답도 재앙이 된다. 신앙 없는 능력이 바벨탑을 쌓고, 죄가 있는 능력이 라멕으로 하여금 세상의 비극을 만들게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이 무엇인가?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능력은 죄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다. 죄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죄에서 승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죄에서 구원을 얻을 것인가?
 
책 '존 애덤스 실화 전기'(니콜슨 저)의 내용이다. 200년 전, 영국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플래쳐를 중심으로 '바운티'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핏컨'이라는 섬에 가서 그곳 인디언들을 교화하여 작은 자유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불과 9년 만에 그 공동체는 실패했다. 바깥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 작은 섬에도 발생했던 것이다. 살인, 폭력, 성 문란, 알콜 중독자로 인한 문제 등. 그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지도자였던 플래쳐가 자살해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회의에 빠졌고 또 다른 지도자였던 존 애담스 역시 실의에 빠져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창고를 정리했다.
 
창고를 정리하던 중 그는 성경 한 권을 발견했다. 지난 9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2개월 간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자신의 죄를 깨닫으며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영국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철회하고 핏컨 섬의 지도자로 남는다.
 
그리스도 없이 구원이 가능한가?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땅은 멸시와 천대의 땅이다. 기쁨이 사라진 땅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는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고 하며 그 땅을 발로 밟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더 이상 꿈이 없었다. 자신들의 땅을 바꾸고 싶었으나 방법을 몰랐다. 그러한 그들에게 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그리스도를 전파하니'였다. 이것만이 저들의 해답이었다.
 
죄악된 이 세상을 누가 바꾸는가? 세상의 꿈을 바꿀 수 있는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으며 그 꿈을 함께 꿀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분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 소망 없는 저들에게 기쁨을 건넨 것과 같이 말이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소망 없는 세상 가운데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세상과 달라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이 세상을 바꾸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바꾸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우리를 통해 일하실 그분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나아가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죄로 물든 세상 가운데 소망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주 목사
대구남덕교회


금-사랑은 희생
본문 : 롬 5:7~8
찬송 : 143장

지난 2월 일본 큐슈의 기독교 순교지를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여행용 가방을 챙겨 호텔 현관에 대기시켰다. 분주한 가운데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를 달렸다. 30여 분이 지나 톨게이트를 나오는데 한 남자가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를 가로막고 갓길에 세우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자기 차의 트렁크를 열더니 여행용 가방 두 개를 우리 일행에게 전달했다. 속으로 '누가 가방을 놓고 온거야'라고 하는 순간, 아뿔사 바로 우리 부부의 것이었다. 일본인의 친절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역에서 한국 유학생 이수현 씨가 술에 취해 기차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 뛰어들었다. 이수현 씨의 희생을 보고 일본 NHK국영방송이 한국에 고마움을 표하려고 겨울연가를 일본어로 더빙하여 방영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로 인해 한류 열풍이 일어난다. 이수현 씨의 희생이 일본인의 마음을 잠시나마 열 수 있게 한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희생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제자도를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가?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이해가 안되어도, 말씀을 좇아가는 것이다.
 
이삭은 모리아 산으로 가는 여정에 아버지에게 묻는다. 장작과 불은 있는데 희생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삭은 어릴 적부터 제사를 보아 왔기에 알고 있다. 희생물이 자신임을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십자가 희생의 구약의 예표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뜻은 무엇인가? 몸으로 드리는 희생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은 몸의 희생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수고"라 했다. 야곱은 자기 환도뼈가 위골되도록 얍복 강가에서 기도로 희생했다. 이 기도로 이스라엘, 곧 이긴 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는 우리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희생의 기도로 부활승리를 하신 예표다. 십자가는 희생이요, 궁극적으로는 사랑이다. 우리 주님이 죽음으로 희생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복귀시키었다.
 
여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나를, 이웃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다. 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나.
 
사랑은 순종이요, 섬김이요, 희생이다. 주의 제자는 이를 따를 뿐이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순종으로 섬김으로 희생으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인규 목사
대전충현교회


토-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라
본문 : 눅 15:11~24
찬송 : 214장

탕자의 비유는 두 아들이 있는 평화로운 한 가정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들로서는 차마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버지에게 "당신이 죽었다고 칩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인자하고 생각이 깊고 아들을 깊이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결국 유산을 받은 둘째 아들은  유산을 처분해 먼 나라로 떠났다. 때마침 그 나라에 흉년이 찾아 왔고 그는 끼니도 잇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탕자는 이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밖에서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이요, 하나님 없는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결국이다.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나는 아버지 집에 살고 있는가? 물론 몸은 아버지 집에 있을 수 있지만 마음도 아버지 집에 있는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는가?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살게 해주셨더라도 참된 기쁨이 거기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 있는가? 이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면 아버지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이 아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아직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 않은 탕자들이 많이 있다. 몸은 떠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다. 모든 행복이 하나님 안에 있건만 주님 밖에서 행복을 찾기에 방황하고 불순종하며 이미 받은 자원을 낭비한다.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하늘 은혜가 고갈될 때, 고통은 주님을 찾는 기회가 되지 못하고, 괴로움은 거룩한 연단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어려운 인간관계는 신앙적인 성숙에 이르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마음에서 하늘의 은혜가 사라지면 사람들을 향한 독한 마음이 쓴 물처럼 올라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이제 결단해야 한다.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랑의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다. 오직 그것이 자신의 불행한 인생의 유일한 해결임을 알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오직 돌아가야 할 고향집과 회복해야할 아버지와의 관계만을 생각했다. 신앙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미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기억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오늘의 기도
 
주님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을 용서하시고 주님 품으로 돌이켜 하늘 은혜를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숙 목사
예수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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