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부활주일과 세례 : 세례는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
2015년 03월 24일(화) 16:00

세례는 언제 베푸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성서적 전통에 의하면 누구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면 언제라도 줄 수 있다. 하지만 교회사의 전통은 세례는 부활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부활주일에 세례식을 통합한 예배를 발전시켰다. 부활절 철야예배(혹 새벽예배)의 백미는 세례식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전통은 4세기 문헌들은 물론 1세기 말까지 올라가는 기독교의 아주 초기문헌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활절 태양이 떠오르기 전, 신앙공동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례를 받는 것은 기독교 예배 중 가장 장엄하고 감동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어거스틴은 이 철야를 '모든 거룩한 철야들의 어머니'라고 불렀을 정도다.


사실 세례는 부활주일이 아니더라도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주일이라면 언제라도 실행될 수 있다. 현대 예배신학은 세례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고 먼저 세례를 받은 신앙공동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강조하기에, 가장 바람직한 세례성례전은 주일 공중예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임종 직전과 같은 예외적 상황도 있지만, 세례는 신앙공동체 전체의 행위이다.


중세를 지나며 사적으로 행해지던 유아세례가 급증하고 성인세례가 급감하면서 부활절 철야에서의 장엄한 세례식은 거의 사라졌었으며, 20세기 예배회복운동을 계기로 다시금 부활절 철야(혹 새벽예배) 속에서 공동체의 적극적 참여가 있는 세례식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들도 부활절에 세례를 베풀어왔다. 그러나 부활주일에 축제적인 특별예배들에 집중하면서, 세례성례를 성금요일에 행하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세례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아닌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지양되어야 한다. 어떤 교회들은 성금요일에 세례를 행하고, 주일 공중예배에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가 완성되었음을 선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엄청난 신학적 오류를 불러온다.


세례의 완성은 언제일까?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은 시점일까 아니면 삼위일체 이름으로 교회에 공표되는 시간일까? 성금요일에 물세례를 받고 부활주일에 공표될 때까지는 어떤 상태인가? 만일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세례 받은 기독교인으로 천국에 가는 것일까? 견진(입교)을 7성례 중 하나로 여기는 로마 가톨릭조차도 20세기에 이르러 물세례 그 자체로서 세례가 완성되고 세례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신학적 입장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세례와 공표를 따로 따로 행하는 행정편의적 관행은 지양되어야 한다.


혹 불가피한 이유로 평일에 세례가 행해졌다 하더라도 이 역시 그 자리에서 공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 후에 주일 공중예배에서 광고의 형태로 회중들에게 알리면 된다. 이처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예배행위들, 특히 성례전은 성서와 교회사 속에서 형성된 신학적 이해와 교단의 헌법에 기초하여 행해져야 한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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