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시간을 과거에 산다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마음극장<12>

주혜주 교수
2015년 03월 24일(화) 15:28

   
▲ / 이경남 차장 knlee@pckworld.com
시계와 더불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달력으로, 시계나 달력은 현실감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해 꼭 필요하며, 지남력(指南力, orientation)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지남력이란 정신 기능 중에 하나로,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이다. 적절한 지남력의 발휘는 의식이나 판단력 등이 잘 유지될 때 가능하다. 보통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지남력으로 구별되며, 정신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이름을 묻거나 "지금 계신 이곳이 어디인가요?",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오늘 아침식사 반찬으로 무얼 드셨나요?"등의 질문을 통해 지남력을 체크한다. 지남력에 장애가 있을 경우 '지남력 상실'이라고 부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2008)'초반에 하나뿐인 아들의 전사통지를 받고 슬픔에 빠진 시계공이 아들을 다시 품에 안아보고 싶은 절절한 마음에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있다고 한다. 시계라는 기계만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현재보다 퇴보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표현을 쓴다. 굳이 시간을 거스르는 사회 현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많은 시간 과거에 산다.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때가 많다. 현재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정신과 환자들에게만 지남력 장애가 있는 게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 지남력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에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측정 가능한 양적인 시간이다. 이에 반해 카이로스는 사람들 각자에게 의미를 주는 주관적 시간이며 정신적인 시간이다. 악명 높은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의미치료의 창시자가 된 빅토르 에밀 프랑클(Viktor Emil Frankl)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비인간적인 환경의 수용소에서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삶의 기회를 포착함으로써 평범한 환경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 내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 수 있다고 보았다.

세네카의 말처럼 하루 하루를 별개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적절한 지남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 숨겨진 기회를 찾아내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주혜주 교수 / 경인여자대학교 정신간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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