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3월 16~21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5년 03월 12일(목) 16:05

월-내가 붙드는 나의 종
본문 : 사 42:1~4
찬송 : 516장

죄에 빠져 병들어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 보려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병이 깊어지고 결국 망하고 마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준비된 계책을 가지고 계신다. 바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종이다. 그는 모든 사단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죄의 종 된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여 낼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의 사람이라도 다 살려내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본문의 말씀이다.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 보자.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는 대단히 겸손하신 분이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릴 자격을 가진 아들이요 하나님이시다. 얼마든지 큰소리를 내실 수 있는 분이셨다. 큰소리로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신지 증거하실 수 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 오셨으나 엎드리라고 소리 지르지도, 물러서라고 외치지도 않았고 샬롬을 선포하셨다. 왜 세상이 시끄러운가? 사람들이 서로 소리 지르기 때문이다, 교만과 시기와 질투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엎드리라고, 왜 물러서지 않느냐고 소리 지르기 때문에 샬롬이 없다. 예수님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 데 큰소리 낼 필요 없지 않은가.
 
둘째는 연약하고 무가치한 우리들까지 섬겨 주신다. 갈대는 참으로 약한 것이다. 하물며 상한 갈대이랴. 그냥 두어도 꺾일 수밖에 없다. 꺼져가는 등불은 굳이 불어서 끌 필요도 없다. 모든 인생은 그 죄로 말미암아 마침내는 꺾이고 꺼져버릴 존재다. 소망이 없을지라도 아직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상한 갈대가 꺾이지 않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꺼져가는 등불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실 뿐 아니라 기름도 공급해 주셔서 계속 불이 타오르게 하신다.
 
셋째는 끝까지 사명을 수행하신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우리의 부족함으로 실망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한두 번 은혜 받는다고 해서 제대로 일어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중증장애인들을 특수교육 하는 선생님들은 학습효과가 아무리 부진해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그런 줄 알고 이일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루에 수십 번 넘어져도 손만 내밀면 잡아서 일으켜 세워준다. 그래서 과거에 무서운 죄에 빠져 있었던 우리들, 중증 장애에 걸린 우리들을 고치셔서 온 세상을 바로 잡아 나가시길 원하신다. 이제 우리는 상한 갈대가 아니며 꺼져가는 등불도 아니다. 온 땅을 푸르게 하는 나무요, 온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이 땅위에 생명의 강줄기가 대하처럼 흘러가게 하는 주인공들이 되자.
 
오늘의 기도
 
온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숙 목사
예수사랑교회


화-사랑은 순종
본문 : 히 11:8~10
찬송 : 440장

성경은 히브리적 사고로 기록되었는데 동사가 발달한 언어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누구신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라고 했다. 이 말씀에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곧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듣고 계신다. 알고 계신다. 움직이시는 하나님, 운행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는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신앙을 신약성경에서 반복하여 교훈을 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인가? 순종이다. 사랑이다.
 
첫째, 떠나라에 떠났다. 하나님께서아브람에게 말한다. "너의 고향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 익숙한 것은 편리함이다. 그러나 타성에 젖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를 타파하기 쉬운 것이 여행이다. 언어 풍습 음식이 다른 것을 접하다보면 내 생각 내 습성이 드러나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반응이 나에게서 나온다. 여기서 변화에 대한 응전이 일어난다. 떠남에 있어서 첫 번째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인간 본연의 숨어 있는 두려움이 이때 드러난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약함을 아신다. 보완으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에 아브람이 행동을 개시한다. 하란을 떠날 때 나이가 이미 75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순종했다. 이것이 사랑이다.
 
둘째, 따라갔다. 하나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으로 대하였다.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다.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갔다. 이것이 순종이다.
 
셋째, 유업을 꿈꿨다. 아브람은 현대인에게 큰 도전의 행동을 하였다. 무모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람과 오늘 우리와 차이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소망이다. 아브라함도 약속으로 받을 유업의 땅과 성을 바라고 있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는 것을 분명히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한 약속과 꿈은 현실이 되기 때문에 고난도 극복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지라고 하실 때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는 아버지께서 생명을 살리시기 위한 계획과 예수님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뜻을 알고 순종하여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이루셨다. 요한사도는 이것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며 감격했다.
 
오늘의 기도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이 다 알아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인규 목사
대전충현교회


수-폭풍 속의 두 인생
본문 : 행 27:9~25
찬송 : 380장

사람은 누구나 '가치'라고 말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가치는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되며 일어날 결과의 원인이 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는 말씀처럼 잘못된 가치는 개인과 공동체에 필연적으로 화를 부른다. 반대로 바른 가치는 어두움 가운데 빛이 되고 절망 중에 구원이 된다. 오늘 본문 27장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 두 인생이 폭풍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첫째, 물질이 주인 되는 '가격인생'이다. 태풍 때문에 항해가 위험할 것을 알았지만 백부장은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항을 결정한다. 왜 위험을 감수했을까? 돈 때문이었다. 큰 배가 태풍 때문에 몇 날, 혹은 몇 달을 지체한다는 것은 큰 손해이다. 돈의 유혹 때문에 눈앞의 위험을 보지 못했다. 철학자 베이컨은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다. 또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라는 러시아 속담도 있다. 성경도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필요가 아닌 믿음의 대상으로 돈을 바라볼 때 결국 인생은 비참해 진다. 혹시 돈과 명예,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위험한 줄 알면서 항해를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가격인생은 후회하는 인생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가치인생'이다. 가격인생이 죽이는 인생이라면 가치인생은 살리는 인생이다. 본문 23절에서 바울은 절망한 사람들을 향해 '내가 속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말로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자신을 소개한다. 바울은 그들과 한배에서 함께 폭풍우를 겪었지만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속한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이 모두 구원함을 받았다. 이것이 가치 인생의 능력이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늘의 능력을 덧입고 하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폭풍우를 바라보라. 그리고 안심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만 주인 삼는 가치인생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께만 가치를 둘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성철 목사
새롬교회


목-신을 벗으라
본문 : 출 3:1~5
찬송 : 240장

남쪽에서 봄소식이 들려온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쫙 펴보자. 성도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모세는 불이 붙어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다가갔다. 그리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은 모세와 독대하기 위해 80년을 기다리셨다.
 
호렙산에서 모세는 신(shoes)을 벗어야 했다. 80 평생 신을 신고 살았던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는 한 번도 신을 벗지 못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이집트(애굽) 왕궁에서 왕자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40년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연단되어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다.

광야의 떨기나무는 바로 모세 자신이었다. 춥고 더운 날씨와 목마른 갈증을 이기며 살아가는 떨기나무, 그래서 거칠고 딱딱해지다 못해 가시로 덮여버린 떨기나무는 왕자에서 양치기로 전락한 처량한 모세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광야의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셨다. 한낱 땔감에 불과한 떨기나무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인간적으로는 연약하고 늙어버린 모세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셨다. 떨기나무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신다.
 
예로부터 신(shoes)은 사람의 존재와 동일시되었다. 군대 간 애인을 버릴 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는 표현을 쓴다. 옛 어머니들이 아기를 낳으러 방으로 들어 갈 때는 제 발로 걸어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장함에 신을 거꾸로 하고 들어섰다.
 
또한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물건을 무르거나 거래가 성사 될 때에 판 사람의 신을 산 사람에게 양도의 표로 주었다. 신약에서 자유인은 그 표로 신을 신었고, 손님의 신을 들거나 신발끈을 푸는 것은 노예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 하셨다. 80년은 너를 위해 살았으니, 남은 생은 나를 위해 살라고 하신다. 80년은 네가 주인 되어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주인으로 삼고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모세는 신을 벗었다. 모세의 그 시간은 80년에 대한 회개의 순간이었고, 영원을 향한 순종의 순간이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는가?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인 우리의 삶 속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있는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신을 벗자.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회개하게 하시어 주께서 명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전규 목사
신림교회


금-작은 일에 충성하는 삶
본문 : 눅 16:10~13
찬송 : 311장

하나님의 나라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세상 나라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서 찾아 나서는 나라인 것이다. 의인 열명 보다 죄인 한 명이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그 일의 작고 큰 것을 논할 것이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위대한 일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영국군 폭격기 한 대가 베를린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선 영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이 때 갑자기 나타난 독일군 전투기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다. 영국 폭격기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독일 전투기가 뿜어내는 총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조종사는 폭격기의 폭발을 예상하였으나 비행기는 폭발하지 않았고 기적적으로 무사귀환 할 수 있었다. 착륙하고 몇시간이 지난 후 비행기 정비사가 조종사를 찾아왔다. 그는 연료탱크에 박혀 찌그러진채 터지지 않은 총탄 다섯 개를 가져왔다. 조종사는 이를 조심스럽게 해체하였는데 놀랍게도 다섯 개의 총탄에는 모두 화약이 들어있지 않았다. 대신에 총탄 하나에 아주 작은 쪽지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이런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독일군에게 강제로 끌려와 공장에서 총탄을 만들고 있는 폴란드 포로입니다. 감시관이 보지 않을 때에 우리는 총탄에 화약을 넣지 않습니다.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아군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쪽지에는 폴란드 전쟁 포로 네 사람의 서명이 담겨 있었다. 전쟁중에 만들어진 수백만개의 총탄 중 다섯 개의 총탄이 영국 폭격기에 타고 있던 군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일은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것을 두고서 작은 것을 택하셨다. 골리앗 대신 다윗을, 수 천명의 미디안 군대 대신에 기드온과 삼백용사를, 아흔 아홉 마리의 양 대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선택하셨다.
 
이와 같이 내가 가진 것이 적을지라도, 보잘 것 없어 보일 지라도 그 작고 부족한 것을 충성스럽게 주님께 올려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보석과 같이 쓰실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오늘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내게 주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리오니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이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주 목사
대구남덕교회


토-하늘에 계신 아버지
본문 : 마 6:19
찬송 : 325장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는 기도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셨다. 필자는 시골에서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며 신비로운 자연광경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신앙에 깊이가 깊어지며 성경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우주로서 첫 번째 하늘이며, 그 위에 두 번째 하늘인 영계가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신 세 번째 하늘(낙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하늘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인 것 같아 보통 포기하기 싶고,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이 동시에 또 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란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생기)이 사람에게 들어와 있다는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의 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 이 영은 하나님께서 떠나시고 죽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성령께서 우리의 죽었던 영을 부활시키시고 그 자리에 임재하시며 임마누엘 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이란 뜻은 '나의 영 안에 계신'이란 뜻으로 친밀성을 의미한다.
 
둘째로 "우리 아버지여"란 뜻은 구약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종은 주인의 재산으로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부자의 관계는 다르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받았고, 상속자이며 생명을 받은 생명관계로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어떠한 허물도 묻지 않으시고 받아주시는 관계이다.
 
셋째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다. 하나님의 속성은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서의 속성은 거룩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성도들도 거룩한 존재로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고 나타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말아도 될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거룩의 유전인자가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영숙 목사
장암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