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이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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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3월 11일(수) 17:06

 
   
 

빅 아이즈(감독: 팀 버튼, 드라마, 12세, 2014)

문학에서 회자하는 말 가운데 유령작가란 표현이 있다. 대필 작가 혹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품의 실제 저자를 가리킨다. 무명작가들이 호구지책을 위해 종종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면, 바로 유령작가로 생계를 영위하는 일이다. 자서전 대필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령작가들은 소설 분야나 심지어 아카데미 영역에서도 활동한다. 아카데미 영역에서 유령작가는 생계유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갑을 관계에서 나타난다. 대체로 시간강사들이나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이다.
 
삶의 단편들로부터 진액을 짜내어 한편의 글로 숙성되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유령작가들이 영혼을 파는 일과 다르지 않은 일을 행하는 까닭은 오직 작가로서 혹은 학자로서 생존을 위해서다. 유령작가로 사는 일은 생계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작가 혹은 학자들에게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지만(어쩔 수 없다고 해서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령작가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게 된 사람은 그야말로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빅 아이즈'는 미국에서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6년에 끝난 한 여류화가의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소위 미술 분야의 ‘유령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마가렛 킨이 주인공이다. 유령작가들이 처한 상황이야 대동소이하지만, 여류화가 마가렛은 이혼녀로서 딸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은 여성이 독립적인 예술가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가렛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또 작품 활동을 계속했어도,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전시할 화랑을 찾을 수 없었고, 작품을 팔 수 있는 형편은 더더욱 못되었다. 결국 전 남편의 소송으로 딸의 양육권이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마가렛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호의를 베풀었던 월터 킨의 유혹에 넘어가 결혼을 하였다.
 
   
 
마가렛의 그림에는 언제나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유난히 큰 눈을 가진 아이와 동물들이 등장했다. 당시 미국인에게 하나의 키치(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지칭)로 여겨질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이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자, 월터는 그림 위에 있는 서명 '킨'을 근거로 스스로를 그림의 화가로 소개하였다. 이 사실에 대해 마가렛은 따졌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월터의 그림으로 판매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류화가로서 불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겐 오직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안정된 삶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월터의 위협과 회유에 넘어간 마가렛은 작업실에 머물면서 그야말로 찍어내듯이 그림을 그려 월터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어야 했다.
 
월터는 작품에 대한 홍보는 물론이고 사업수단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작품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인쇄하여 저가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이것은 당시 예술을 유통하는 방식에서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오직 화랑에서만 작품을 직접 사고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인쇄물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터의 사기 행각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가렛은 지금까지 월터의 것으로 알려진 그림들이 자신의 것임을 밝혔다. 마가렛은 1986년 법원에서의 최종 판결을 통해 자신의 그림에 대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마가렛의 그림 스타일은 미국 대중문화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팀 버튼 감독 역시 그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 그가 마가렛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특별히 보여주려 했던 점은 그녀의 작품 자체를 조명하기보다 오히려 갑을 관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불리한 환경에서 부당하게 취급받으며 살아야 했던 한 여류 화가의 삶이다. 성 차별이 관용되는 현실에서 재능 있는 여성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 수밖에 없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곧, 마가렛은 자신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름을 숨겨야만 했다. 마가렛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면서 팀 버튼은 마가렛 작업실과 작업실 밖을 대조적으로 표현했는데, 작업실은 어둡고 작업실 밖은 언제나 밝은 톤이었다. 이에 비해 월터 킨 캐릭터를 통해 팀 버튼은 갑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작용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곧, 월터 킨은 예술을 동경하여 사람들에게 예술가로 불리길 원했고, 또한 후에는 화가인 아내의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울 뿐만 아니라 막대한 부를 얻었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 여류화가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통해 갑을관계로 얼룩져 있는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불리한 환경을 이용하여 갑의 횡포를 허용하거나 성차별과 인종차별 같은 부조리한 현실은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욕망의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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