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정신병에 걸린다면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 주혜주 교수의 마음극장

주혜주 교수
2015년 03월 04일(수) 10:58

"내가 만일 정신병에 걸린다면 아마 경조증 환자가 될 거예요."

   
 
필자의 말에 간호사실 회의용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있던 병동 동료들이 100퍼센트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진단은 환자들 전용이 아니다. 정신과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치료자들도 '만약 정신병에 걸린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해 각기 자가진단을 내려보곤 했다. 본인이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다른 치료자들이 그동안 봐왔던 것을 자료 삼아 진단을 내려줬다. 누구는 유난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 자꾸 걱정이 된다며 건강염려증, 누구는 한 번 우울해지면 한없이 가라앉는다며 우울증, 누구는 강박장애, 누구는 알코올 의존증…. 간호사실 밖에만 환자가 있는 게 아니라 간호사실 안에도 환자들이 있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환자다.

내 진단은 '경조증'. 가벼운 조증이라는 뜻으로, 기분이 뜨긴 뜨되 조금 들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경조증보다 더 기분이 심하게 뜬 경우를 '조증'이라 하고, 이에 반해 기분이 심하게 가라앉는 경우를 '우울증'이라 한다. 또한 조증과 우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것을 '조울증'이라 하는데 기분이 극과 극으로 나타난다 하여 양극성 장애(Bipolarb Disorder)라고도 한다. 경조증이나 조증, 우울증, 조울증 모두 기분장애에 속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광기 없는 위대한 천재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명한 사람들 많은 이들이 조울증, 정신분열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창조성과 조울증의 관계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이 행해졌는데, 실제로 학계 발표에 의하면 로베르트 슈만, 버지니아 울프,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과 같이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창조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감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다. 보통 민감성은 뇌의 전두엽이 억제하지만 조증 상태에서는 억제되지 않고 표출된다. 따라서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독특한 표현이 가능하며 모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높고 실험정신에 열려 있게 된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창조성과 더불어 조울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또한 많은 경우 조울증이 치료되면서 동시에 예술성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결과 '질병에서 벗어난 인생의 행복이냐' 아니면 '질병 상태에서의 예술이냐'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나 또한 이순(耳順)의 나이에 가까워지니 웃는 횟수도 확연히 줄고 젊어서는 좔좔 외우던 우스갯소리를 이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만발하던 아이디어들도 줄어서 가끔씩만 겨우겨우 독창적이다. 그러다 보니 큰 웃음소리와 창조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경조증 진단명을 받았던 그때가 문득문득 그립다.

주혜주 교수 / 경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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