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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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2월 25일(수) 11:21

   
 

아메리칸 퀼트(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드라마, 15세, 1997)

사랑이 머무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다분히 문학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질문은 영화에 나오는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퀼트의 주제다. 퀼트 주제치고는 다소 무겁게 여겨지지만, 사실 이 질문은 영화의 내용을 이끈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여섯 명의 여인들이 각자 사랑이 머무는 곳을 퀼트로 표현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해진 규칙이나 패턴도 없이 각자의 취향에 따라 짜깁기 하는 퀼트를 통해 미국 여성의 삶과 사랑을 비유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미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 스토리텔링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퀼트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운 음악은 문학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랑이 머무는 곳이란 표현은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제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여인들, 곧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잠시 머무는 손녀 핀의 결혼 선물을 위한 공동 퀼트 작업에 참여하는 여섯 명의 여인들 모두가 사랑에 큰 아픔과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자녀들을 남겨둔 채 남편이 떠나 혼자가 되었고, 누구는 남편을 일찍 잃고, 누구는 남편을 잃은 동생과 정을 통한 남편 때문에 절망을 경험해야 했고, 누구는 가족에게 등 떠밀려 플레이보이 남편 곁에 평생 머물러야 하는 고통을 안고 지낸다. 누구는 자신이 하녀로 있는 집의 아들과의 관계에서 딸을 낳고 홀로 자녀를 키워야 했고, 딸은 엄마 곁을 떠나 파리로 가서 자유롭게 살다가 이름도 모르는 한 유부남과의 보낸 저녁 시간을 추억하며 그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이들 모두에게 사랑은 지나간 것 같았고, 그래서 사랑이 머무는 곳을 찾는 일은 그들에게 추억 여행이며 하나의 숙제일 수밖에 없다.
 
비록 퀼트라도 그래서 의미가 있는 주제다. 추억 여행을 통해 그들은 사랑이 머물러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이미 남자 친구에게서 청혼을 받은 핀은 여섯 여인들의 추억 여행을 통해 사랑과 인생을 배우고 깨닫는다. 이미 부모의 불화와 이혼에서 진실한 사랑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꼈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핀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확신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심지어 자신마저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터였다. 사랑은 결코 머물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렇다, 어쩌면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 봄날이 가듯이, 그렇게 사랑은 갈 뿐이다. 사랑 속에 있다고 해도 단지 사랑의 추억을 안고 살거나 다가오는 사랑을 기대하며 살 뿐이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이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아이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혹은 일에 쫓겨 살면서 점점 식어져 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사랑으로 부부가 되었다 해도, 부부는 사랑으로 살지 않고 정으로 산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머무는 곳은 있을까? 우리 삶에서 결코 식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는 사랑은 있을까? 그 사랑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퀼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멤버들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과 마찰 때문에 처음 시작했던 사람들 모두가 참여하는 작품이 완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퀼트는 완성된다. 퀼트의 완성과 더불어 퍼즐 맞추듯이 각자에게 사랑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지가 하나둘씩 밝혀진다. 이렇게 보면 한국어 영화 제목보다 영화의 원제 '아메리칸 퀼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영화의 의미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추억에 관한한 각자의 상황은 모두 달라도, 퀼트가 지향하는 사랑이 머무는 곳은 바로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이었고, 또한 비록 인생이 숱한 파편조각으로 산산이 흩어져 있다 하더라도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혜민 스님이 사랑이 머무는 곳은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아름다운 퀼트가 완성되는 곳, 다시 말해서 비록 산산이 흩어지고 심지어 갈등과 마찰로 점철된 인생이라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사랑은 그곳에 머문다는 말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1978년에 제작된 영화로 '사랑이 머무는 곳에'라고 번역된 영화 'Ice Castles'(도널드 라이 감독)도 용서와 상처의 회복이 있는 곳이 사랑이 머무는 곳임을 말한다. 비록 사랑은 봄날 가듯이 그렇게 간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머무는 곳은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이며, 조화가 있는 곳이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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