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상칠언과 촛불기도

[ 이야기가 있는 예배 ] 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목사
2015년 02월 24일(화) 08:50

성 금요일의 영어식 표현인 '좋은 금요일(Good Friday)'은 '위대한 금요일(Great Friday)'에서 발전한 표현이다. 주님이 돌아가신 슬픈 날이기도 하지만, 실로 이 날은 사탄의 권세가 패하고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위대하고 좋은 날이다.
대부분의 세계교회가 지키는 성 금요일의 대표적인 예전은 '테니브리(Tenebrae)'라고 하는 촛불기도회이다. 라틴어인 테니브리는 '그림자' 혹 '어두움'이란 뜻으로, 테니브리의 독특한 상징은 13개의 초가 꽂힌 삼각형의 촛대이다. 주님과 제자들의 숫자이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본문들이 읽혀질 들려질 때마다 초들이 하나씩 꺼지며, 마침내 주님의 초가 꺼질 때는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깊은 어둠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예전은 고대부터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가 거의 변형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물론 성공회, 루터교, 그리고 몇 몇 개혁전통에서도 볼 수 있는 예전인데,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은 전통적인 촛대 보다는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초를 진열하거나 초의 개수를 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약간의 변형은 있지만, 성 금요일 촛불기도회는 세계교회가 지켜온 유산이다.


정오에 모여 주님께서 돌아가신 제 9시(오후 3~4시)까지 약 3시간 정도 진행되기에 '세 시간 기도회'라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에게는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말씀들에 기초한 '가상칠언 묵상 기도회'가 더 익숙하다. 사실 이 가상칠언 기도회는 18세기 페루의 한 예수회 사제가 테니브리를 위해 구상한 것인데, 1788년경에 로마에 소개되고 19세기 초에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그리하여 가상칠언 말씀과 만난 테니브리 촛불기도회는 말씀을 강조하는 개혁전통들 속에서도 크게 환영을 받게 되었다.


한편 예배나 기도회에서 초를 사용하는 것이 성경에 없기에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교회들이 있다. 여기서 예배에서의 촛불사용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말씀을 위한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단순한 낭만이나 아름다움만을 위한 초사용은 재고되어야 하지만, 초라는 상징이 말씀을 만나 주님의 은혜를 더욱 가시적이고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선하고 효과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예배는 그 시초부터 빛 되신 주를 상징하기 위해 초를 사용하였다. 박해 시대에 카타콤 등에서 몰래 모여야 했기에 초는 조명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이러한 조명도구들까지도 예전 속에 포함시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문화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선교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테니브리가 큰 변혁을 겪지 않고 세계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이 된 것은 말씀이 상징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한국 개신교 교회들에게 예배와 상징에 대한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준다.

김명실 목사 / 장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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