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대한민국 욕망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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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 목사 sscc1963@daum.net
2015년 02월 11일(수) 15:25

강남, 1970 (감독: 유하,드라마/액션, 청불, 2015) 

   
 
강남구와 서초구를 포함하는 강남 지역은 성형외과와 입시학원으로 유명하지만, 성공한 연예인과 경제인과 권력자들을 거리에서 일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로 강남 지역은 한국인의 관심을 넘어 세계인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노래 때문에 강남을 목적지로 삼아 대한민국을 여행한다는 말도 들린다. 강남은 대체 어떤 곳일까? 유하 감독의 3부작 곧,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에 이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지만, 혹시 영화 '강남, 1970'은 강남 스타일 이후 나타난 강남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도 한 몫 하진 않았을까 추측한다. 왜냐하면 강남 지역 개발 역사는 강남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남 지역 개발에 대한 역사를 소재로 삼고 있다고 해서 영화가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할 것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도시계획에 참여한 바 있었던 손종목이 직접 쓴 책 '서울도시계획이야기'에서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리고 어린 시절 강남 지역에 살면서 감독 개인이 직접 보고 느낀 체험을 반영하였다고는 해도, 허구적으로 재구성했다고 명시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명시하면서 오히려 사실에 관심을 두게 하는 전략일 수 있지만, 일단 영화에 나오는 장면과 사건에만 집중해서 볼 것을 권장한다. (스포일러 있음)
 
전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강남 땅 투기는 땅 투기의 정석으로 소개되며 전수될 정도다. 다른 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강이남 지역으로 영등포에서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영동이라 불리는 논밭으로 가득했던 곳에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땅 투기가 시작된 계기는 비밀리에 대선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국토개발계획을 세워놓고 땅을 사들였고, 국토개발 사업을 발표하여 고가로 땅을 되팔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필요로 했고, 땅을 통해 돈을 벌려는 과정에서 종지라 해서 땅을 팔지 않으려는 농민들을 속이거나 위협했으며, 또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헐값에 사들여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강제 행위, 곧 깡패들의 폭력은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깡패가 동원된 셈인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볼 수 있었듯이 자유당 정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강남 개발은 서울의 인구집중을 분산하기 위한 계획이기도 했지만, 특히 한국 전쟁이후 서울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의식에서 착안했고, 권력과 돈에 대한 탐욕이 작용하여 이뤄낸 결과다. 돈과 권력을 얻으면 누구나 강남으로 거처를 옮기는 사실에서 강남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강남은 누구에게는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실현된 곳이지만, 누구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곳이다. 대한민국 욕망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를 통해 권력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특히 권력이 폭력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잘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정치인은 권력을 얻기 위해 폭력을 필요로 했고, 권력을 얻고 나서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야말로 소비품이었다. 당시 권력은 통치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고 또 법으로 보장된 힘이 아니라 폭력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폭력보다 더 치졸하고 더욱 더러운 폭력, 유하 감독은 그것이 권력임을 보여주는데, 더러운 싸움판의 진상을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진흙탕 싸움 장면에서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권력에 의해 소비되는 폭력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감독은 두 사람, 곧 용기(김래원 분)와 종대(이민호 분)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권력과 폭력이 서로 유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인간관계에서 배신이 거듭해서 일어나고, 서로 믿고 지냈던 관계들은 가차 없이 파괴되며, 결국 이 모든 과정에서 권력에 의해 소비될 뿐임을 보여준다.
 
용기와 종대, 그들은 고아원에서 자라 서로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다. 소위 돈용기와 땅종대라 불리는 까닭은 용기에게는 돈에 욕심이 있었고, 종대는 버젓한 자기 집을 갖고 싶었던 탓에 땅에 욕심을 가졌다. 그들은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넝마주의 생활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무허가 건물이 철거되는 바람에 거처할 곳조차 사라진다. 우연한 계기에 건달패에 가담한다. 서로 헤어져 지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계파에 각각 속한다. 두 사람 모두 돈과 땅에 대한 욕심 때문에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한다. 얻고자 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 두고 좌절할 위기감을 느꼈을 때, 두 사람이 보인 태도는 달랐다. 종대는 그래도 가족 관계를 지키려는 순수함을 보였지만, 용기는 동생으로 지냈던 종대를 실컷 이용한 후에 배신한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의 내용이 대한민국 현실에서 멀지 않음을 짐작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땅과 돈, 그리고 권력과 경제, 권력과 폭력은 서로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허구라 하더라도 시대극의 단면을 읽어볼 수 있다.
 
삶의 터전에 불과했던 땅은 누구에게는 권력의 유지를 위한 욕망의 대상이고, 누구에게는 돈을 벌기 위한 욕망의 대상이며, 누구에게는 삶의 터를 마련하기 위한 욕망의 대상이었다. 강남은 이런 욕망들이 분출된 곳이다. 그 땅에 흘린 피가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소리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으며, 그 땅에 묻힌 한들은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며 우리 안에 있는 땅에 대한 욕망의 민낯을 대면하는 일이 참 불편했다.

최성수 목사/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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