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달과 6펜스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5년 02월 11일(수) 11:37
… 나에겐 가능한 일이라도, 그에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과 나중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쨌든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하오." 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삼류 화가 이상은 되지 못할걸요. 그런데도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나요? 다른 분야에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요. 보통 수준만 되면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지요. 하지만 예술가는 다릅니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불 보듯 빤한 사실을 말하는데 왜 바보라는 거죠?" "나는 어쨌든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선 못 견디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윌리엄 서머셋 모옴(William Somerset Maugham)의 소설 '달과 6펜스'의 한 대목입니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은 고갱 대신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그는 처자식이 딸린 마흔 살의 가장이자 전형적인 주식 중개인이며 화자의 표현으론 '그저 선량하고 따분하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출을 합니다. 그의 가출은 '충격'이며 소설 속 화자 앞에서 내뱉는 말도 도발적입니다..

"예술의 세계와 생활의 세계는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예술과 인생을 달과 6펜스에 빗대 말합니다. 6펜스는 현재 사용되지 않지만 금액이 그리 크지 않은 영국 은화, 즉 누구나 흔히 손에 쥘 수 있는 물질입니다. 달은 쉽게 닿을 수 없는 우리의 꿈과 열망을 말합니다. 달과 6펜스는 둘 다 동그랗고 은 빛으로 빛나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예술 창작의 열망을 내 뿜는 주인공은 '달'로, 세속적인 물질적 가치관을 지닌 주변 인물들은 '6펜스'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로 들여다 봤습니다..

학창시절 읽었지만 너무 길고 지루해 포기했던 책, 줄거리만 겨우 기억하는 달과 6펜스를 다시 본 것은 오래 전 스코틀랜드 자그마한 대학의 기숙사에 머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책 뒷 표지에 서머셋 모옴이 했다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인생을 거의 다 살고 난 다음에야 '나는 몰라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됐다." 그 글을 읽으면서 사실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당시 지도 교수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까지는 용기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알려주기 전까지는 …..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잘 몰라도 아는 척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요. 분명히 아닌데도 그런 척 하기도 합니다. 틀린 것을 알면서도 맞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중국 고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큰 용기이며 겸손함입니다. 졸업 시즌입니다. 선지동산을 떠나는 졸업생들은 특히 하늘에서 주시는 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용기, 하나님께선 그런 당당하고 겸손한 사람을 불러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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